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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현장

슬라이고 도심의 예이츠 동상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19. 8.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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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린 기준 약간 북쪽으로 치솟은 대서양변 항구도시 슬라이Sligo는 월리엄 버틀러 예이츠가 유년시절을 자주 보낸 외가라

더블린 태생인 그는 생평 이 슬라이고를 잊지 아니하고 영원한 안식처로 그 자신이 이곳을 점찍었다.

슬라이고가 어떤 위치를 점하는지 알 수 없으나 이 작은 지방도시 운명은 예이츠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그만큼 이곳에서 예이츠 위상은 가히 절대라, 현재도 도시 곳곳은 예이츠를 기억하려는 기념물이 많다.

도심 복판 십자로엔 예외없이 그의 동상 차지다.


벤 불빈이 진산으로 정좌한 그 아래 교회는 그의 조부가 교구 목사였으니, 질긴 인연은 그 연원이 깊다.


그 중심엔 예이츠메모리얼센터가 있다.
은행 지점으로 쓰던 것을 은행연합회가 70년대 기념관으로 기부했다는데

아쉽게도 예이츠 직접 유품은 거의 없어 판넬 위주 전시가 일층에서만 있고 이층 삼층은 이곳 시민을 위한 갤러리로 사용한다.

70년대라면 이미 그의 직접 체취가 담긴 유물들이 다른 데로 흩어졌을 테니 모으기도 쉽지 않았으리라.


일층 한켠은 카페로 쓴다.

아마 그에서 나오는 이문을 유지보수에 쓰지 않을까 싶다.


아마 원본 필름은 다른 데 있으리로대 그의 생전을 증언하는 사진들로 그의 삶 편린을 본다.

생평의 짝사랑 모드 곤을 포기하고 선택한 서른살 연하 부인이 궁금했는데 저렇단다.


예이츠 인생에 지울 수 없는 여인 중 두 명이다.

첫번째가 문제의 모드 곤이며 아래가 몽고메리라 그와 더불어 아일랜드 극작 운동을 예이츠는 펼치니 그 일환으로 더블린에다가 Theatre Abbey를 만들기도 한다.

예이츠는 금전이 좀 풍부했던 듯 한데 문학으로 번 돈인지, 유산인지는 모르겠다.

그는 이미 생전에 문단의 기린아였다.

젊은시절엔 낭만주의 색채 짙은 시작으로 주목받다가 점점 나이들어가며 농익은 시를 쓴 희한한 인물이다.

시인이 등따시고 배에 기름 끼면 예외없이 망쪼가 드는데 죽음이 가까워질수록 그의 시는 심금을 더 울린다.

국회의원이 되어 어느 초등학교를 장학사마냥 순시하고 쓴 시를 보면 기가 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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