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신문을 읽다가>
저번에 호운湖雲 박주항朴疇恒이란 화가 이야기를 잠깐 했었는데, 오늘 다른 일때문에 옛날 신문을 뒤적거리다가 그의 개인사를 약간 찾게 되었다.
일단 그는 함경북도 명천 사람이었고, 1920~30년대 자기 고향을 위해 두어 번 거액의 기부금을 낸 이력이 있었다.
그런데 그 아버지가 수연壽硯 박일헌朴逸憲(1861-1934)이라는 이였다. 박일헌과 박주항이 그동안 부자관계인 줄도 모른 채 서로 따로따로 인식되고 있었는데, 이제야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이 사람은 1880년대 조-청 국경분쟁 당시 경흥부사를 역임하며 백두산정계비를 확인하는 등 정계定界 과정에 깊이 관여했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서화가로도 꽤 유명해서 제법 많은 작품(주로 난초)이 남아있다.
하지만 그 격이 높지 못하다 해서 미술사 연구에서도 언급되는 적이 드문데, 어쩌다가 그 가족관계를 확인하게 된 것이다.
그의 본관은 밀양이고, 1889년 경흥부 서기관으로 처음 출세하였으며, 1914년 부안군수로 퇴임한다.
그리고 서화에 탐닉해 여러 번 전시회를 가졌다는 기록도 있다.
생각해 보니 박일헌과 박주항의 난이 꽤 닮았는데, 부자관계라고 하면 이해가 되기도 한다.
박일헌의 생몰년도 이번에 위의 기사로 처음 알게 되어 밝혀둔다.
소호 김응원(1855-1921)보다는 아래고 위창 오세창(1864-1953)보다는 위이니, 그의 아들 박주항은 대략 이당 김은호(1892-1979)나 육당 최남선(1890-1957) 연배는 되었을 것이다.
박일헌의 작품을 보면 아마 소호에게서 난초를 배우지 않았나 싶은데, 그 이상의 내력은 더 알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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