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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효성왕 때 중시가 되었다가 경덕왕 때 상대등으로 승진했지만, 자연재해로 물러났다.
삼국사기 권 제9(신라본기 제9) 효성왕 : 3년(739) 봄 정월에 왕이 할아버지와 아버지 사당[祖考廟]에 참배했다. 중시 의충(義忠)이 죽었으므로 이찬 신충(信忠)을 중시로 삼았다.
삼국사기 권 제9(신라본기 제9) 경덕왕 : 16년(757) 봄 정월에 상대등 사인(思仁)이 병으로 관직을 그만두었으므로 이찬 신충(信忠)을 상대등으로 삼았다. 22년(763)...가을 7월에 서울에 큰 바람이 불어 기와가 날라가고 나무가 뽑혔다. 8월에 복숭아꽃과 오얏꽃이 다시 피었다. 상대등 신충(信忠)과 시중 김옹(金邕)이 관직에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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