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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계초
양계초梁啓超(1873~1929)는 모든 방면을 흔든 거인이었으나, 그의 아들 양사성梁思成(1901~1972)은 건축학 한 분야에서만 대가였다. 미국 유학 중에 건축학을 공부하는 아들 사성이한테 아버지 계초가 쓴 편지에 이런 말이 있다.
"넌 나 같은 애비를 둔 것이 네 일생일대에 정말 만나기 어려운 행복이란 걸 알아야 한다...나는 학문적 취미가 무척이나 넓은 사람이다. 내가 어떤 전문적 한 분야에서 성취를 이루지 못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하지만 내 생활은 내용이 아주 풍부해 영원히 싫증도 권태도 느끼지 않는다....나는 태양이 새로 솟아오르듯, 연꽃이 새로 피어나듯 새 생명을 얻은 것처럼 활발한 삶을 얻는다."
셰시장 지음, 김영문 옮김 《량치차오 평전》, 글항아리, 2015, 71쪽
양사성
이 대목을 읽다가 어펑 샤르트르가 오버랩한다.
"나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죽은 행복을 누렸다."
그리고 내친 김에 양사성 평전이 있으면, 그것도 번역이 이뤄졌으면 한다. 양사성은 한국 고건축학도들에게는 신과 같은 존재다. 하기야 매양 유돈정劉敦楨(1897~1968)을 베껴먹더라만....(January 10, 2016)
양계초 전집 음빙실합飮冰室合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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