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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THESIS

양산 다방동 조개무지 53년만에 파제끼고 보니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1. 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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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 양산 다방동 패총서 가야시대 '고지성 취락' 확인
김동민 기자 / 기사승인 : 2021-02-23 15:48:05
패총, 환호, 망루 등 가야 전기 생활상 유적 규명

 

k-odyssey.com/news/newsview.php?ncode=179563838951297

 

경남도, 양산 다방동 패총서 가야시대 ′고지성 취락′ 확인

(양산=연합뉴스) 김동민 기자 = 경남도는 양산의 대표적인 고대 생활유적으로 알려진 다방동 패총이 가야 시대 전기 고지성 취락(高地性 聚落)으로 확인됐다고 23일 밝혔다.고지성 취락은 조망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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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하나 염두에 둘 대목은 이번 발굴성과는 시굴조사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해당 유적이 분포하는 양상이 어떠한지를 간보기했으니, 추후 본격 발굴조사가 있고 난 뒤에야 해당 유적의 성격이라든가 조성 운영 시기 등에 대한 판단을 어느 정도 내릴 수 있겠다. 

 

이 기사와 그 토대가 된 아래 첨부 보도자료 원문을 보고는 우선 궁금한 점이 이번에 시굴조사를 확인한 유적 혹은 유물을 구체로 어느 때쯤으로 보는지가 논급이 없어 이번 발굴 담당 경남도청 학예사께 전갈을 넣었더니 2~3세기쯤으로 본다 했으니 

 

환호? 

 

그리 보는 근거는 아무래도 출토 토기를 기준으로 한 것이니, 그가 이르기를 주거지로 추정하는 구간 시굴 트렌치에서 수습한 와질瓦質 단경호短頸壺와 장동옹長胴甕, 완碗 등을 근거로 삼는다 했다. 이 대목을 아래 보도자료에서는 "주거지에서는 연질軟質과 와질의 항아리와 바리, 옹 등 저장용 토기가 출토되었으며"라고 표현한다.

 

이를 보면 단경호만 아니라 장동옹, 완과 같은 다른 토기류까지 거의 모두 연질이면서 와질이라는 뜻인 듯하다. 

 

이런 토기는 대체로 3세기 이전에 등장하는 것으로 보는 듯하니, 이에 근거하여 이번에 드러난 흔적들을 2~3세기로 본다는 뜻으로 봐도 무방할 성 싶다. 

 

저장용 용기? 

 

그렇다면 이것이 가야유산이라는 근거는 무엇일까? 가야는 금관가야를 기준으로 서기 42년에 건국해서 532년인가에 망했으니, 1~6세기를 가야 존속시기로 삼을 적에 그 초창기 가야가 남긴 흔적으로 본다는 것이다. 더욱 엄밀히는 이 무렵 가야 제국諸國은 이른바 학계의 압도적인 이해에 의하면 변진 혹은 변한이라는 연합체를 구성하는 단위들이었으므로, 변진시대 흔적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것이 가야 혹은 그 초창기의 변진시대 가야 흔적인가는 못내 의심한다. 지금의 양산 땅이 가야 영역이었다는 근거가 불충분하기 짝이 없기 때문이다. 

 

덧붙여 이번 발굴대상지가 구체로 어디인지 드러나지 아니해서 다시금 이 대목을 확인하니 서로 인접하는 양산시 남부동 26번지와 다방동 244번지라고 하니, 이 대목은 혹여 현지 사정이 궁금한 분들을 참고하기 바란다. 

 

이번 발굴은 경남도가 추진하는 ‘가야유적 국가지정문화재 승격 지원사업’ 일환이라 하거니와, 실제 발굴조사는 (재)경남연구원이 2020년 12월 이래 수행했다 하거니와, 이 시굴조사 성과를 토대로 하는 본발굴은 올해 재개되지 않을까 한다.

 

조개무지 패총. 바지락 파티? 

 

이번 조사 성과는 다음과 같이 정리가능하니

 

구릉 가장자리를 따라 환호環豪가 발견되고 그 안쪽에서는 원형 주거지와 망루로 추정되는 고상高床건물이 확인되었으며, 사면부에서는 패총이 드러난 사실이어니와, 조사단에서는 환호 안쪽 중앙부가 빈 공간으로 남은 반면 그 주변으로 주거지가 조성된 점을 근거로 이곳을 전형적인 고지성 환호 취락高地性環豪聚落으로 밝혀졌다

 

것이어니와 

 

나는 이 대목 판단을 유보한다. 내가 볼 땐 고지성 환호 취락이 아니라 산상 제단이다. 이는 지금껏 한국고고학이 말하는다른 고지 환호 취락에서도 대부분 해당하는 것으로, 저런 곳에 취락이 형성될 수가 없다. 나는 자연인이다도 아니고, 저런 데서 사람이 상거常居할 수는 없다. 

 

물론 나 역시 추정이지만, 본 발굴을 보고서 최종 판단을 하고자 한다. 

 

딱 보면 산상 제단이 있을 자리다. 

 

그건 그렇고 왜 이 유적이 발굴 이래 50년 동안이나 방치되었을까 했더니, 역시나 사고 친 데가 국립박물관이다. 국립박물관 조사한 데는 모조리 이 꼬라지다. 이 친구들은 본능이 유물 빼쳐먹기라, 유물만 빼쳐먹고나서는 아몰랑 해당 현장은 패대기치곤 했으니, 이곳 역시 유감없이 그런 꼬라지로 방치했다. 이 무렵 대학박물관들도 모조리 이 꼬라지였다. 이 놈들은 유적을 보존할 줄을 몰랐다. 

 

아래는 경남도가 오늘자로 배포한 관련 보도자료 전문이다. 

 

 

<유적 위치> 

 

 

카카오맵

당신을 좋은 곳으로 안내 할 지도

map.kakao.com

 

 

가야 생활상 간직한 양산 다방동 패총, 53년 만에 발굴 재개

 

- 경남도 ‘가야유적 국가지정문화재 승격 지원사업’ 통해 발굴 실시
- 패총 외 환호, 망루 등 가야 전기 고지성 취락 유적 규명
- 양산의 가야문화와 생활상 밝힐 수 있는 보물 창고로 평가

 
양산의 대표적인 고대 생활유적으로 알려져 온 다방동 패총이 가야시대 전기 고지성 취락* 유적으로 밝혀져 학계 내외로부터 큰 주목을 받고 있다.
* 고지성 취락(高地性 聚落) : 조망과 방어에 유리하도록 구릉 정상부나 높은 지대에 지은 취락

양산 동산(東山, 해발276.8m)의 서쪽 구릉에 위치한 다방동 패총은 일제강점기인 1921년 처음 발견된 이래 1967년 국립박물관의 소규모 학술조사에서 골각기와 철기, 토기 유물과 도랑, 목책 등 유구가 확인되었으나 후속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전문 연구자들조차 상세한 상황을 알 수 없었다.

경상남도(도지사 김경수)는 양산 다방동 패총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가야유적 국가지정문화재 승격 지원사업’ 대상으로 선정하고 발굴조사를 추진하였다. 발굴조사는 (재)경남연구원이 2020년 12월부터 수행하였다.

이번 발굴지점은 유적이 분포한 구릉의 정상부와 동쪽으로 이어진 평탄지, 사면 부 일대이다. 발굴결과, 구릉의 가장자리를 따라 환호**가 확인되었으며, 그 안쪽 공간에서는 원형주거지와 망루로 추정되는 고상건물이, 사면부에서는 패총이 확인되었다. 특히 환호 내 중앙부를 빈 공간으로 두고 주거지가 조성되어 있어 전형적인 고지성 환호 취락으로 밝혀졌다.
** 환호(環豪) : 취락을 방어하기 위해 설치한 도랑

주거지에서는 연질과 와질의 항아리와 바리, 옹 등 저장용 토기가 출토되었으며, 패총에서는 먹고 버린 참굴, 백합 등의 패각이 두껍게 퇴적되어 있었다.

이번 발굴을 통해 지금까지 쓰레기장인 조개더미로만 알려졌던 다방동 패총이 낙동강과 양산천이 한눈에 조망되는 지리적 이점과 깎아지른 사면의 지형적 이점을 활용한 취락 유적임이 밝혀졌으며, 양산도 가야인의 생활무대였음을 증명할 수 있게 되었다.

지난 23일에는 관계 전문가들이 참석한 가운데 다방동 패총의 발굴성과 검토와 보존방향 설정을 위한 학술자문회의가 개최되었다.

이날 발굴현장을 둘러본 임학종 경남도 문화재위원은 “양산의 가야시대 생활상을 추적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 평가하면서 “국립박물관 조사 후 반세기만에 발굴이 재개된 것은 퍽 다행한 일로, 가야 생활유적이 드문 만큼 체계적인 발굴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영식 경남도 문화관광체육국장은 “경남도에서는 중요한 가야유적임에도 조사기회가 없어 역사적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유적에 대해 2018년부터 행 ․ 재정적 지원을 해오고 있다”면서, “경남의 가야사를 규명하는데 중요한 유적으로 밝혀지는 경우, 체계적으로 보존․활용될 수 있도록 국가문화재로 지정하는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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