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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 막부 최후의 전쟁이라 할 보신전쟁에 대해 써본다.
보신전쟁의 발발과 전개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져 있어 굳이 쓸 필요 없을 것 같고,
여기서는 에도성 함락 이후의 정황에 대해서만 써보겠다.
신정부군과 에도막부 사이에 전쟁이 발발하자
에도 막부의 쇼군은 신정부군에 맞서 싸운 게 아니라
도망가서 은둔하여 일체 저항을 하지 않았다.
이 바람에 막부군은 제대로 된 싸움도 못하고 에도성까지 줄줄이 빼앗겼다.
물론 이 과정에서 막부편에 선 무사들의 저항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260년 일본을 지배한 막부의 최후 치고는 너무 허망하게 무너진 바
가장 큰 이유는 에도막부 개창 초기에 설계된 친막부 세력이 전혀 기능을 못했다는 데 가장 큰 이유가 있다.
위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에도막부는
믿을 수 없는 이성 제후를 열도의 외곽에 배치하고 (도자마)
도쿠가와 집안의 제후이거나 (신반)
도쿠가와 집안 누대의 가신들의 번 (후다이)을
수도 에도성 주위에 집중적으로 배치하여 만약의 사태에 대비했다.
그런데 막상 전쟁이 일어나고 보니
전쟁의 중심이 되어야 할 쇼군은 일체 저항을 않고 은둔하며
에도성 근방의 신반, 후다이 번들은 저항은커녕
아예 신정부편을 들며 막부에 총을 겨누는 번도 출현하여
260년 전 막부의 개창자들이 설계한 그림대로 전혀 되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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