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 역사에서 영남 사족의 기원과 변천을 이해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이를 해석하는 데 몇 가지 생각해 볼 부분이 있어 간단히 적어둔다.
첫째는 영남 사족의 경우, 조선후기 당쟁이 격화해서 중앙정계에서 퇴조하고
이인좌의 난 이후 이 지역 사족의 처지에 대해 과장해서 해석하는 부분이 있다.
결론으로 말하자면 이 지역 사족들은 서인 독주 이후 퇴조한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전 지역 사족을 제외한 향촌 사족 중에서는
여전히 주류를 형성하고 있었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흔히 이야기하는 영조 이후 영남차별론 등은 사실과 다르다.
정확히 이야기 하자면 영남차별론이 아니라, 기전 지역 사족을 중심으로 번영하는 그 이전 과거로 돌아간 데 불과하고,
앞에서도 썼지만 우리나라 기전 지역 사족들은 한국사에서 향촌사족에 대한 우위를 상실한 적이 없다.
딱 하나 예외적 상황이 성종대 이후 백여년간 영남 사족의 중앙 진출이 눈에 띌 뿐으로,
그 시점이 지나자 원상 복귀한 것 뿐이다.
이미 학계에서 지적된 것처럼 조선 후기 문과 급제자 수 등을 봐도 특별히 이 지역에 대한 차별의 흔적이 있었다고 볼 수 없다.
노상추일기 등에서 볼 수 있는 영남에 대한 차별도,
사실 따지고 보면 이 지역 사족들이 지닌 기전 지역 사족에 대한 강한 경쟁의식에서 기인하는 바 크다고 본다.
조선후기 이 지역의 상대적 박탈감은 이해할 수 있겠지만
굳이 다른 향촌 지역과 비교한다면 상대적으로 차별받았다고 볼 부분이 크지 않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이 지역 사족의 특징은 무엇인가.
이전에도 썼지만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는 이 지역 사족들은 외부의 힘에 의해 해체된 역사적 계기가 별로 없었다는 점이다.
이 지역은 삼국시대 고대국가로 성장하였고, 통일 과정에서도 향촌을 지배하던 종족들이 강제로 해체되었을 역사적 계기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이에 반해 고구려 백제 지역은 통일 이후 극도의 사민과 정복정책 등으로 기존의 향촌사회의 시배체제가 크게 흔들렸을 것이라 본다.
지배체제가 흔들린다는 것은 결국 지배세력의 교체도 포함하고, 향촌을 지배하던 이들의 땅이 정복자에 의해 접수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변화의 계기는 한국사에서 한 번 더 있었는데, 바로 후삼국 시기다.
이 시점에 영남지역은 고려에 투항함으로써 후삼국통일 이후 향촌의 지배체제의 변천에 있어 후백제 지역과 큰 차이가 있었을 것이라 본다.
다시 말해, 후삼국 시기, 영남 지역은 고려에 투항함으로써 자칫 이 지역 향촌 질서가 무너질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라 본다.
반면 후삼국 시대의 종식과 함께 후백제 지역은 상당한 향촌질서의 동요가 있었을 거라 보는 바,
필자는 고려시대 공전의 기원 중 상당 부분은 후백제 지역에서 창출되었을 것이라 본다.
앞서 말한 것처럼 전주이씨가 영남지역에 극히 희박한 분포를 보이는 것은
전적으로 이 때문이라 할 수는 없겠지만, 조선전기 공전의 분포의 차이 때문에 그런 면도 있지 않은가 생각하는 것이다.
공전이 삼국시대, 후삼국시대를 거치며 반복적으로 구 백제-구후백제 지역에서 창출되는데 반해
이 시대의 동란에서 살아 남은 영남 지역은 상대적으로 그 바깥에 비해 국가가 통제할 수 있는 공전의 양이 적었던 것이 아닌가.
이런 가설에는 필자의 상상에 의한 바가 많아 전적으로 옳다고는 장담할 수 없겠지만, 한 번 생각의 여지는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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