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논픽션 저작에 평소에 관심이 많아 관련 국내외 서적을 섭렵하는 편인데
전반적으로 국외와 국내 작품들이
그 문제의식이나 논의의 수준에 있어 차이가 상당히 크다.
물론 이것은 그 책을 쓴 당사자, 인문학자의 수준에서 비롯한다고 할 수 있을지 어떨지 모르겠지만
필자가 보기엔 이건 인문학자 자신의 수준 때문도 있겠지만
일차적으로 독자들 수준 탓이 더 크다.
인문학 대중화가 많이 이야기 되면서
소위 말하는 말랑말랑한 저작이 인문학에도 많아졌는데--.
그런데 말이다.
쉽게 쓴다고 하는 것이 반드시 인문학 대중화의 본령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요는 조금 어렵게 깊게 이야기를 써도 독자들이 반응을 해줘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은 경우가 아주 많다.
우리나라-.
이런 이야기 하면 기분들 나쁘시겠지만
기본적으로 책을 너무 안 읽는다.
책을 너무 안 읽는 독자를 상대로 책을 쓰자니
점점 책은 내용이 없어지고 말장난에 더 신경을 쓰게 되고
이러다 보면 우리와 나라밖의 인문학은
앞으로 수준차가 점점 더 벌어질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기분 나쁘신 분들도 있겠지만
사실은 사실이니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책은 다른 선진국 사람들이 우리보다 훨씬 많이, 그리고 깊게 읽는다.
그들의 책 이해수준도 높다.
우리가 지금 다른 나라에 비해 굉장히 뛰어난 지적 수준에 있다고 착각하는 분이 많아 글을 써두는 바다.
한글이 쉬워서 그렇지 우리 중에는 기본적인 독해 이해도 안되는 사람도 생각보다 많다.
왜?
책을 평소 읽지를 않아서 그렇다.
사람의 지적 수준을 결정하는 건 학벌이 아니다.
평소 얼마나 독서하고 생각하는가에 그 사람 지적 수준이 결정된다.
우리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위대한 독자가 위대한 저작을 만든다.
작가가 만드는 것이 아니다.
인문학자가 만드는 것도 아니고.
위대한 저작을 낳은 사회는
그런 대단한 작가가 나와서 대단한것이 아니고
그 독자층이 대단하다는데 더 주목해야 한다.
#학술서 #대중서 #학술서_대중서
*** Editor's Not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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