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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한국사의 세 번째 키워드: Self-Governance

by 초야잠필 2024. 1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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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한국어로 번역이 참 애매하다. 

한국사에는 Self-Governance에 대한 집착이 매우 강한데, 

이건 자주성이라 그냥 번역하기도 애매하고, 

미묘한 뉘앙스가 있다. 

써 본다면, 

한국사는 한 번도 제국을 칭해 본 적이 없는 데서 알 수 있듯이 

패권국가를 지향한 적이 없다. 

물론 고구려나 고려 초기에 그것과 비스무리한 뭔가를 지향한 흔적은 있지만 

그런 시대에도 중국쪽 헤게모니 국가에 대해서는 사대를 했기 때문에 

완전한 패권국가이자 외부의 통제를 벗어난 국가의 위상을 누린 시기가 
참 드물다 할 것이다. 

그럼 그것으로 끝이냐-. 

한국사는 그렇다면 일제시대 식민사학자들 이야기 대로 
종속성이 특징이냐, 

그것은 물론 아니고.

저 Self-Governance에 대한 희구는 무척 강했다 할 것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최소한 우리 일은 우리가 결정해야 한다는 생각, 

이를 위한 최소한의 독립은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이 무척 강했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고려시대 몽골간섭기에 
입성론에 대해서 결사 반대한 이유는

이 최소한의 방어벽인 Self Governance를 침해받을 가능성이 있었기 떄문이다. 

일본 역시 지금도 우리들에게
끊임없이 배척을 받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부분을 1910년 건드린 탓도 크다고 생각한다.

일본인들 생각에는 어차피 1910년 이전에도 중국에 사대했으니 

굳이 1910년 이후 일본의 병합이 뭐 그리 문제냐 라고 둘러댈지 모르겠지만, 

이 한국사의 Self Governance에 대한 집착을 생각하면

일본은 한국사의 넘어서는 안 되는 금도를 넘어 서 버린 셈이 되겠다. 

개인적으로는 그래서 한일관계는 쉽게 좋아지기 어려운 측면이 있어 

앞으로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정치인들도 절대 쉽게 다루지 말고 
항상 조심 조심 또 조심하면서

양국 우호를 위해 전진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보면 병자호란 이후 
Self Governance의 벽을 넘어설 수 있는 무력과 정치적 위상이 있었음에도 

19세기 말 청일 전쟁 이후 간섭기 까지 이 벽을 넘지 않고 조선을 통제하고자 했던

청나라-.

얘들은 한국사를 제법 잘 알고 있었던 친구들이 아닐까

그렇게도 생각해 본다. 


삼전도의 굴욕-. 청이 조선을 다룬 방식은 Self Governance를 최소한은 남겨 두었다는 점에서 한국사 입장에서는 이 쪽을 잘 아는 매우 영악한 방식이었다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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