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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윤관은 왜 실패했는가"에서 출발한 세종 이도의 음모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2. 1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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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에 좀 문제가 있지만 대세에는 지장이 없다.



정부가 편찬한 조선 왕대별 공식 편년체 역사인 조선왕조실록 중 유독 세종실록에는 지리지가 붙어있다.

세종은 왜 이 지리지를 편찬했을까? 아니, 세종시대를 정리하며 조선왕조는 왜 이 지리를 굳이 넣었을까? 단순히 조선왕조가 개창하고서 이제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아 그것을 정비하고자 하는 차원에서? 그래서 지리지 말고도 다른 志들을 편찬했다고?

나는 한국 역사상 가장 영토 야욕이 컸으며, 이를 위해서는 음모를 마다 않은 세종한테서 그 음모술수를 배워야 한다고 역설했다. 어떤 음모인가?

목적을 위해서는 그는 수단방법 가리지 않았지만, 그것은 언제나 명분을 동반하는 각본에 기반했다. 간단히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 그 논리를 만들었다. 지리지는 중국이 치고 들어올 때를 대비해 짠 시나리오다.

북방으로 진군해 4군6진을 무력으로 정벌한 세종은 우선 고려시대 윤관의 9성이 왜 경영에 실패했는지를 궁구하고는 사민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도출했다. 군사만 덜렁 보내 정복하는 일은 순간이 빛날지 모르나 수성守城은 할 수 없다는 결론이었다.

그래서 그는 4군6진을 개척하면서 대규모 사민 카드를 꺼내들었다. 그곳을 영구히 내 피로써 채워 지배하고자 하는 욕망이었다. 그의 이런 결단에 삼남 땅 사람들이 느닷없는 전출 명령서 하나에 눈물바다를 만들며 바리바리 짐을 싸들고 온 가족이 머나먼 북방 내륙으로 향했다.

이를 관철해 나간 뚝심이 새삼 놀랍기 짝이 없지만, 그런 야욕의 군주 세종한테도 두려움이 있었으니, 그 땅에 대한 연고권을 주장하며 언제건 그 땅을 내어 놓으라는 중국의 반발 혹은 협박이 있을까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럴 일을 대비해 만들어 놓은 각본이 지리지였다. 특히 그 북방에 대한 기술을 살피면 그 음모가 드러난다.

그 논리는 실로 간단해서 "함길도는 역사적으로도, 정통성 측면에서도 조선의 땅이니 조선의 땅이어야만 한다!" 딱 이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윤관이 개척했다는 9성을 일부러 두만강 너머로 비정했다. 두만강 너머에다 윤관이 개척한 땅을 두는 대신, 그는 한 발을 양보해 두만강 전선으로 북방선을 물러났다.

이는 역사조작이었다.

하지만 각본에 의거한 그의 역사조작은 정작 수백년 뒤에 화려한 광채를 발하게 된다.

그의 음모가 없었던들, 그가 그런 시나리오를 마련하지 않았던들 이른바 백두산정계비는 지금의 강계 지방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 아래 신동훈 선생 글에다가 덧보탠 史論이다.

함길도가 폭로하는 세종실록지리지의 음모

함길도가 폭로하는 세종실록지리지의 음모

세종은 함경도를 병합하고 나면 명나라로부터 간섭이 있지 않을까 항상 두려워했던 것 같다. 윤관의 비가 두만강 건너 선춘령이라는 구절도 그렇지만, 이 땅이 역사적으로 한반도 국가의 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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