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학자들이 논문이나 책에서 매우 자주 쓰는 말로 세 가지가 있다.
첫째가 "오류가 있을 수 있으므로 동학同學들의 많은 지도편달(혹은 질정)을 바란다"는 것이요,
둘째가 "이번 논고論考에서는 다루지 못한 문제는 별도의 자리를 마련하겠다"는 것이며,
셋째가 "좀 더 많은 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학문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적어도 우리 고고학계나 역사학계에서 이 말을 말 그대로 받아들였다가는 낭패보기 십상이다.
편달, 즉 채찍질을 바란다고 해놓고선 자기 학설이나 주장을 비판하는 '동학'에게는 발끈하다 못해 서로 사이가 틀어지기 일쑤이고,
약속한 '별도의 논고'는 도통 나올 기미가 없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그런데 "좀더 많은 검토가 필요하다"는 말은 그동안 자기가 주장하던 말이 틀렸다는 유력한 증거가 나왔을 때 아주 즐겨 쓴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백제 왕성이냐 아니냐는 풍납토성을 둘러싼 논란에서 바로 이런 말이 많이 등장한다.
(김태식 《풍납토성, 500년 백제를 깨우다》, 김영사, 2001, 137쪽)
***
어제 6. 1 지방선거에서 집권여당 국민의힘 무슨 거창한 직함을 지닌 권성동이 여당 압승에 짐짓 겸손을 가장해서 하는 말 중에
"잘할 때는 아낌없는 박수를 주시고 잘못할 때는 꾸짖어 주시기 바랍니다"
라는 말이 있어, 그 대목을 듣고는 피식 웃음이 나와 과거에 쓴 글 한 대목을 긁적거려 본다.
***
근자 신라 금관이 생전에 쓰던 모자가 아니요 죽은 사람을 위해 얼굴에다 덧씌운 데스 마스크 death mask 페이셜 마스크facial mask라 하니 오만잡상인이 다 들고 일어나 그렇지 않다 강변하는가 하면
개중 학자연한 친구 중에선 이른바 양시론兩是論이라 할 만한 요물을 들고 나와 이르기를
첫째 둘 다 맞을 수 있다 하는가 하면
둘째 꼭 그렇다는 확고한 증거는 없으니 좀 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는 물타기를 하고 있으니 같잖기가 여름날 하품 하는 황소 같다.
뭘 더 검토해?
지난 백년을 검토하고도 시간이 모자라니?
남들 검토할 때 넌 뭐한거니?
그냥 실토해라.
검토고 나발이고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다가 너가 그렇다 말하니
괜히 객지 한 번 붙어본다고 말이다. [2025.11.8 보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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