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술한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이야 말로 콜럼버스 달걀 같은 것이어서 애매한 부분이 있다.
"알고 있어도 아는 것이 아닌 경우"가 꽤 있기 때문이다.
전술한 직지를 보자.
직지가 금속활자일 가능성이 있다는 건 직지 내용을 통독하면 당연히 알았을 것이다.
직지가 프랑스에 있다는 것도 몰랐을 당시 국내 학자들을 제외하면, 프랑스 도서관의 사서들은 당연히 알았겠지.
통독하면 마지막에 써 있지 않나.
책 말미에 써 있잖나.
청주목 외 흥덕사 주자 인시 淸州牧外興德寺鑄字印施
라고.
그러니 이게 활자, 특히 주자라는 걸 금속을 부어 만든다는 뜻이라면 당연히 금속활자일수 있다는건 당연히 짐작했을 것이라는 말이다.
20세기 초반 프랑스에서 이미 이것이 세계최초의 금속활자일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는건 아마 딱 이 정도 단계의 "이미 알았다" 일 것 같다.
그런데 한 번 다시 생각해 보자.
직지가 알려진 후 한국의 학자들은 이 직지가 "금속활자원본"인지, "번각본(목판이겠다)인지", 아니면 "목활자"인지, 확신을 한동안 못했다.
프랑스 사람들이라고 달랐을까?
그들도 확신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동네 방네 떠들지 않은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는 프랑스 쪽에서 직지를 대대적으로 떠들지 않은 이유는 둘이다.
첫째는 이게 정말 금속활자 원본인지 확신을 못했다는 점,
두번째는 확실치도 않은데 굳이 떠들어서 한국에 반환 빌미를 주면 안된다는 생각.
박병선 박사야 당연히 이것이 금속주자본일 가능성이 있다는 첫 보고자는 아닐수 있다.
책 말미에 써있으니 당연히 책을 통독하면 박박사 이전에 이미 "알고 있었다"고 하는 사람이 나올수 밖에 없다는 말이다.
박병선 박사의 공로는 이 책의 존재를 한국에 까지 알려 "동네방네 다 알게"만든데 있다고 본다.
그러니 이 책이 금속활자라는 것이 확정되었지, 만약 이런 과정이 없었다면?
글쎄. 필자는 아직도 이 책이 프랑스 도서관에 먼지를 뒤집어 쓰고 묻혀 있을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P.S.1) 한가지만 물어보자.
한국에서는 프랑스 도서관에 무슨 책이 있는지 다 아는가?
모른다면 박병선박사의 발고 없이는 지금도 직지는 잠을 자고 있을수 있다는 설명, 그렇게 쉽게 부정할 수 없다.
P.S.2)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을 너무 과대평가하지 말라.
우리가 모르는건 저쪽도 모른다. 책을 읽었으면 주자라는 건 당연히 알았겠지만 이게 금속활자 원본인지 저쪽이 무슨 수로 알겠는가? 이런건 실무경험으로 결판 내는거라 프랑스에서 그걸 확신했을리가 없다. 필자는 이걸 결판 낸건 조선의 활자본 경험이 풍부한 이쪽 학자들이 결판 낸거라 본다.
P.S.3) 우리나라 활자인쇄본이 평소 찍는 부수를 생각하면 유교서적도 아니고 불교서적인 저 책이 살아 남은건 필자가 보기엔 기적에 가깝다 할수 있다고 본다.
저 책을 지금까지 보존해 준 프랑스에 대해서도 반드시 약탈문화재의 관점에서만 볼 필요 없다.
어쨌건 국립 도서관 고서적으로 편입하여 관리한데 대해서는 높게 평가할 필요가 있는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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