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훈 (서울대 체질인류학 및 고병리연구실)
만약 우리가 라키가리 유적을 발굴 하게 된다면 그 대상은 인더스문명 전성기 때 공동묘지로서 라키가리 유적에 살던 사람들이 묻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지역이었다. 이 곳은 1990년대에 ASI (인도고고학연구소)가 이미 한차례 예비 조사를 하여 인더스 문명시기 공동묘지 구역이라는 것을 확인한 곳이라 여기에 무덤이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신데교수 역시 우리와 함께 이곳을 사전 조사 차 방문했을때 같이 조사를 하게 된다면 이곳을 파게 될것이라는 이야기를 하였고 실제로 2013년에는 해당 구역에 대한 간단한 약식 조사를 시행한 바 있었다.
라키가리 유적의 공동묘지 자리. 이 곳은 땅 주인이 따로 있어 발굴이 쉽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땅 주인과 양해가 이루어지면서 결국 공동묘지 발굴이 이루어졌다.
우여곡절 끝에 데칸대 신데 교수는 라키가리 유적의 정식 발굴 허가를 받아냈다. 발굴하게 되는 곳은 주거지 지역 한 곳과 라키가리 유적 근방 공동묘지. 조사를 하게 되면 우리 연구실은 공동묘지 쪽 발굴에 투입되어 여기서 확인되는 인골에 대한 조사, 분석을 수행하게 될 것이라 했다.
2015년 부터 2016년까지. 본격적인 조사가 이루어 질 것이고 이 시기에 우리도 현장에 투입되게 되었다. 현장 발굴은 주거지 지역은 데칸대 닐레쉬 자다브 선생이, 공동묘지 구역은 김용준 박사가 책임지고 발굴하는 책임 분담이 이루어졌다. 우리 연구실도 발굴 기간 중 무덤 발굴 현장 조사에 참여하며 출토된 인골 분류 및 분석을 모두 우리가 진행하게 되었다.
발굴 지역 항공사진. 붉은 색 선으로 표시된 지역이 ASI 시굴 지역으로 1990년대에 조사가 이루어진 곳이다. 나머지 A1-B2까지 지역이 데칸대-서울대 팀에 의해 조사 된 곳이다. 이 지역의 발굴은 김용준 박사 책임하에 이루어졌다.
이러한 생각밖의 성과에 흥분했던 것도 잠시.
우리를 골치아프게 한 것은 우리쪽 조사 경비를 조달 할 방법이었다. 소규모의 발굴이라 그렇게 많은 돈이 필요하지는 않지만 국내 여건상 해외 조사로 연구비를 탄다는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 당시에도 언감생심 꿈 꾸기 어려웠다. 조사 경비는 데칸대와 우리가 공동 분담하기로 했기 때문에 우리 역시 조사 경비를 속히 조달 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하지만 앞에서도 한번 썼지만 우리나라에서 왜 연구를 우리와 무관한 나라에서 우리와 무관한 주제를 가지고 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기 매우 어렵다. 어차피 국내에서는 애써봐야 받기가 어려울 것이므로 우리는 그런 기대는 일단 접었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가 하면 국내가 아니라 해외, 내셔널지오그래픽의 지원을 받는 것이었다.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는 연중 발굴 조사를 심사하여 연구비를 지원한다. 재단 홈페이지에 가면 연구비 지원 포맷이 있는데 이를 작성하여 올리면 내부 심사위원들이 심사하여 당락을 결정한다.
아래 내셔널 지오그래픽 홈페이지에 있는 지원 내역을 보면 우리가 당시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고자 했는지 적혀있다. 일독을 바란다.
The proposed project will focus on relevant human remains discovered in a Harappan-period (ca. 4,500 BP) cemetery within the newly identified Rakhigarhi site. The investigation will entail 1) gross-anthropological, 2) paleoparasitological, 3) stable-isotope and 4) ancient-DNA (aDNA) analyses as well as 5) craniofacial reconstruction. Specifically, the gross-anthropological and other examinations will provide invaluable data on their health and disease statuses. aDNA analysis on Rakhigarhi specimens will provide an invaluable data to the quest on the in situ continuity of the Harappan people's biological traits with the people who live in the same areas today. Additionally, facial reconstructions will provide tantalizing glimpses of what the Harappan people actually looked like. By these various advanced techniques, a full and very detailed biological picture of the Harappan people will be obtained.
요약하면 라키가리 유적지에서 나오는 인골을 고고학적 발굴에 의해 수습한 다음 이에 대한 포괄적 조사를 수행하는 것이다. 인류학적 연구, 기생충학적 연구, 안정성동위원소 및 고DNA, 얼굴복원까지 지금까지 미궁에 싸여 있던 인더스 문명 주인공들의 생물학적인 특징을 밝혀 내고자 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였다. 현재까지 전세계적으로도 매우 희귀한 연구이므로, 인더스 문명 연구의 가치를 생각하면 연구비 지원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였다.
우리 제안에 대해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고맙게도 왜 우리가 거기가서 발굴을 해야 하는지. 한국인과 인더스 문명이 무슨 관련이 있는지 전혀 묻지 않았다 (!). 우리가 투고한 연구비 계획서를 심사 한 후 (꽤 빡세서 총 3회에 걸쳐 수정 후 심사를 다시 받았다) 마침내 많지 않은 돈이지만 내셔널 지오그래픽으로부터 우리에게 지원되었다. 지원 조건은 얻어지는 학술 성과를 메스컴에 보도하는 경우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가장 빨리 보도하게 해주어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학술보고는 제외). 당연히 우리는 조건을 받아 들였고 재정적으로도 우리가 라키가리 현지로 달려갈 준비는 이로써 끝났다.
아래를 클릭해 보면-.
라키가리 연구 종료 후 내셔널 지오그래픽 뉴스에 보도 된 우리 연구 현황이 나온다-. 클릭요망!!
라키가리 발굴 작업. 김용준 박사 지휘하에 이루어졌다. 시료 오염을 막기 위해 모두 방호복을 입고 있다. 인도 땡볕에 이 작업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는 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알 수 없다.
이 땡볕에 이 옷을 뒤집어 쓰고 발굴하는 작업은 안해 본 사람은 모른다... 라키가리 유적. 2016년. (이건 접니다. 저도 죽을뻔 했어요. 더워서.)
라키가리 유적 발굴 중. 연구실 홍종하 선생. 2016년.
라키가리 유적 발굴 중. 2016년.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이 김용준 박사. 김박사는 공동묘지 구역 발굴을 책임졌다. 이 젊은 친구들의 웃음을 모두 기억하기를-. 가운데는 신데 교수.
김용준 박사의 공동묘지 발굴팀의 점심식사. 캠프에서 점심 식사가 도시락에 담겨 배달이 온다. 만족스럽지 않은 식사지만 발굴대원의 눈빛을 봐라. 학자로서 긍지라는 것이 바로 이런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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