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단장께서 쓰신 다산에 대한 글에 대해 덧붙이자면-.
다산에 대한 글은 대부분 찬상 일변도인데 대부분의 이러한 다산에 대한 고평가는 쉽게 인정하기 힘들다.
태반은 다산이 이전의 유학자들과 어떤 부분에서 다른지 정확히 모르면서 다산의 글 내용만 정리하여 쓴 내용이거나
아니면 주변국가의 동시기 동향에도 눈을 질끈 감고 오로지 다산만 보고 쓴 글이 대부분이어서 인정하기 힘들다는 말이다.
가장 대표적인 부분이 다산의 근대성인데,
다산의 어떤 부분이 근대적이라는 것인지 참 동의하기 힘들다.
다산경학이라고 하지만, 필자는 다산의 논어고금주 하나만 읽어봤다만,
이전에 조선땅에서는 보기 힘든 주를 폭넓게 인용해 책을 지은것 하나는 높게 평가하겠다만,
다산경학은 어디까지나 성리학, 그것도 정통성리학에서 한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한 것이라 그 안에서는 근대성을 찾기 힘들다는 생각이다.
흠흠신서도 마찬가지인데, 다산이 흠흠신서에서 한 이야기들은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내용이다.
흠흠신서만 죽도록 파면 감탄할 수도 있겠다 생각은 해 보지만, 이러한 대단한 수준의 법의학 전통은 동아사아에서는 이미 송대에 시작되었던 것인지라 이것을 다산의 공덕으로 돌리기 힘들다는 말이다.
필자가 보기에는 다산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가 나오려면 동시기의 주변국가에 대한 우리의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유학 전반에 대한 인식이 깊어져야 정확한 실상을 볼것이라 생각한다.
특히 이런 비교검토는 무시하고 마치 성경파듯이 다산이 한 이야기만 죽도록파는 경우도 보는데 이렇게 해 가지고는 필자 생각으로는 뭐 하나 대단한 것이 나오기 힘든다고 본다.
다산학에서 정말 필요한 것은 제대로 된 비교검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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