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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조는 중국사에서 전무후무한 대혼란기였지만
황하 유역에 집중해서 살던 대륙 인구가 화남지역으로 대거 이동을 시작한 첫발이기도 하다.
이전에 올린 아래 지도는 한대漢代 중국 인구인데
이 당시까지만 해도 얼마나 많은 인구가 화북지역에 집중해 있었는지 알 수 있다.
전국시대 지도를 보면 초나라는 화남 지역에 거대한 땅을 소유한 것으로 나오지만
화북지역에 비해 극히 희소한 인구밀도를 지닌 곳임을 알 수 있다.
마왕퇴 한묘가 등장하던 당시 그 주변은 사람들이 얼마 살지 않는 곳이었던 셈이다.

문제는 단지 사람이 많이 살지 않았다는 것으로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아래 지도를 보면 아래쪽에 장사시가 있고 중간 위쪽에 COVID-19 발생으로 유명해진 우한시가 있는데,
우한시, 창사시, 그리고 형문시를 있는 찌그러진 모양의 삼각형 지역이(붉은 선 안쪽) 보인다.
이곳이 유명한 운몽대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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