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계절의 노래(30)
새로 장미를 심고 끄적이다[戱題新栽薔薇]
[당(唐)] 백거이(白居易, 772~846) / 김영문 選譯評
뿌리 옮겨 땅 바꾸니
시들지 말기를
야외 뜰 앞에
봄 한 그루 심는다
아내 없는 고을살이
적막한 봄날에
꽃이 피면 장차 너를
부인으로 삼으리
移根易地莫憔悴, 野外庭前一種春. 少府無妻春寂寞, 花開將爾當夫人.
(2018.05.14.)
꽃을 아내로 삼은 사람은 백거이에 그치지 않는다. 북송 유명한 시인 임포(林逋)는 항주 서호(西湖) 고산(孤山)에 은거하여 매화를 심고 학을 기르며 자연과 더불어 생을 마쳤다. 그는 평생 결혼도 하지 않은 채 매화를 아내로 삼고 학을 자식으로 삼았다[梅妻鶴子]. 그야말로 매화와 결혼하여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바람을 피우지 않았으므로 평실상부하게 매화의 남편이라 할 만하다.
백거이는 임포보다 앞서 생존한 당나라 시인이다. 그에게는 금슬 좋은 양씨(楊氏) 부인이 있었다. 그가 어린 시절 네 살 아래 이웃집 소녀 상령(湘靈)과 맺은 첫사랑 이야기는 비련의 러브스토리로 전해진다. 어머니 반대로 첫사랑과 결혼하지 못하고 문벌이 비슷한 양씨 부인과 혼례를 올렸지만 신혼 초에 백거이는 아내에게 “살아서 한 집에서 친히 지내고, 죽어서는 한 무덤에서 티끌이 되자[生爲同室親, 死爲同穴塵]”(「아내에게贈內」)고 맹세했다.
백거이가 남긴 시문에 의하면 그는 첫사랑 상령을 끝내 잊지 못했고, 그의 집에는 번소(樊素)와 소만(小蠻)이라는 미모의 가기(家妓)가 있었다고 파악된다. 집에 가기를 두고, 관에 관기(官妓)를 두는 것은 당시 관습이었다. 그럼에도 백거이는 아내 양씨를 지극히 사랑했다.
아내가 그리워 뜰 앞에 장미를 심고 그 장미를 아내로 여긴다는 묘사는 아내를 사랑하는 그의 마음이 얼마나 지극했는지 짐작케 한다. 백거이의 다정다감한 성격은 다양한 꽃을 묘사한 그의 시에 잘 드러난다. 그의 꽃 사랑은 아내 사랑에 다름 아니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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