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 유교 가례가 관철되면서
이전까지 장례와 납골 관련하여 개인이 아니라 사찰에서 담당하던 의례가
가정으로 들어와 버렸다.
무슨 말인고 하니 가례가 관철되기 전에는
어른이 돌아가시면 모시는 의례와 행사는 대부분 사찰에서 진행되었던 것이
가례 이후에는 온전히 가정의 몫으로 들어와 버렸다는 말이다.
일본에서는 전혀 가정에서 준비하는 의례가 아닌 추모행사가
한국에서는 온가족이 모여 가사노동의 형태로 남게 된 것은 이 때문이다.
이것이 과거처럼 농경사회로 어차피 집에서 타작도 하고 밥도 하고 부침개도 부치던 시절에는 문제가 안 되었겠지만,
지금은 평소에도 밥을 집에서 잘 안 해먹게 되면서 온전히 명절 때 노가다로 추모행사가 남게 된 것이다.
가례 도입 이후 때 아닌 가내 가사노동의 형태인 조상추모행사로 변모한 이 풍습을
이제는 각 가정 집에서 분리해 낼 때다.
조상을 추모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고,
추모를 해야 하는 공간을 집에서 분리해야 한다는 말이다.
과거에는 돌아가실 때도 집에서 돌아가셔야 한다고 해서
병원에서 돌아가실 때 쯤 엠블란스 타고 댁으로 귀환해서 집에서 임종하시는 분이 부지기수였다.
지금은 누가 그러는가? 집에서 앓다가도 돌아가실 때는 병원으로 들어가는 세태다.
조상 추모행사도 마찬가지다.
이 행사 자체를 가족에서 분리해 내야 한다.
추모를 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것이 교회가 되었건, 사찰이 되었건 아니면 또 다른 추모의 공간이건 간에
이제는 조상추모를 가내수공업의 모습에서 벗어나게 할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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