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의 메이지 유신 직전 시기를 우리가 구한말이라고 부르듯이 막부幕府의 말, 막말幕末이라고 일본에서는 부른다.
이 막말에는 막부를 쓰러뜨리고자 하는 반막파, 혹은 토막파와
막부를 옹호하는 친막파 사이에 치열한 대결이 펼쳐졌는데,
요즘 젊은 친구들이 보는 애니메이션에서 자주 나오는 검객 이야기 대부분이 바로 이 시절 토막파와 좌막파 대결이 그 시대 배경이다.
막부를 쓰러뜨리고자 하는 토막파에는 이를 선동하는 뒷배경이 있었는데,
바로 혼슈 서쪽 끝에 자리잡은 조슈라는 번이었다.

이 죠슈번은 도쿠가와 막부가 세워질 때 세키가하라 싸움에서 도쿠가와 반대편인 서군에 가담했다가,
다행히 망하지는 않고 서쪽 끝에 쳐박혀 300년 동안 은인 자중, 칼을 갈고 있던 번이었다.
이 죠수번이 막말에 완전히 토막파 소굴이 되어 사사건건 막부를 걸고 넘어지니
막부는 결국 군대를 동원하여 죠슈번을 쳐들어가게 된다.
이 죠슈정벌은 약 1년여의 간격을 두고 두 차례 있었는데,
이 정벌전에서 결국 막부는 죠슈번을 이기지 못하고 철수하여,
막부가 종이 호랑이임을 천하에 보여준 꼴이 되어 버렸던 것이다.
이 죠수정벌을 이기지 못한 후 딱 1년 후에는 정권을 천황에게 다시 돌렸고,
그로부터 딱 1년 만에 보신전쟁이 일어나 막부는 망했으니,
죠슈번에 칼을 뽑은지 2년만에 막부는 최후를 맞이한 셈이다.
칼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다.

칼집에 있을 때 무서운 것이지 일단 칼을 뽑으면 반드시 베어야 하고,
만약 칼을 뽑았는데 베지도 못하고 이기지도 못하면 결국 안 뽑느니만 못한 것이다.
그래서 에도 막부 삼백년간 사무라이들은 자신들의 상징으로 칼을 차고 다녔고,
자신들에게 무례한 농민은 베어도 된다고 했지만 이를 순진하게 믿고
칼을 뽑아 정말 아무나 벨 정도로 바보 같은 사무라이는 거의 없었다.
칼은 칼집에 있을 때 칼이지 뽑으면 더이상 칼이 아니다.

그래서 청동기시대에 칼집 안에 청동검이 들었건 돌칼이 들었건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는 말이다.
뽑을 일이 없었기 때문에 그렇겠다.
요즘 세상사를 보니 일단 칼을 어느 쪽이 한 번 뽑은 모양인데,
칼집에서 뽑은 칼은 도로 넣기가 쉽지 않다.
에도 막부의 최후가 그 사실을 증명해주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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