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癡呆)'라 하지만, 이게 얼마전까진 '노망'이었다. 요샌 라틴어에서 유래한 영어를 아예 갖다가 '디멘샤(dementia)'라고도 하는 모양이다. '싱글맘'이라지만, 이게 순한국어로는 '애딸린 과부(혹은 처녀)'다. '치매' 혹은 '싱글맘'이 선호되는 까닭은 그 반대편에 위치한 다른 표현들인 '노망'이나 '애딸린 과부(처녀)'가 주는 공격성을 상대적으로 둔화하기 때문이다. 뭐 그렇잖나? '노망' 혹은 '애딸린 과부(처녀)'라 하면 그때나 지금이나 비하가 그득한데, 그에 견주어 '치매'는 어쩐지 교양 좀 있어 보이고, '싱글맘'은 모더니스틱까지 하니 말이다.
치매 환자를 위한 무용의 가치 이해하기 프로그램...치매를 가장 쉽게 표현하는 다른 말은 '노망'이다. 연합DB
이와는 결이 약간 다르긴 하나, '위안부(慰安婦)'라는 말은 그 자체 참으로 기분나쁜 말이거니와, 그래서 이에 대한 영어 표현을 보면 항상 "comfort woman"이라 해서 싱글 쿼터 혹은 더블 쿼터를 단다. 왜냐? '위안부'라는 말 자체는 순한자어라 좀 어렵게 보여서 그 정확한 개념어가 뇌리게 잘 남지 않는 까닭이다. 그래서 '위안부'라 쓸 적에는 별 표시 없이 저리 써도 용납이 된다.
하지만 이걸 영어로 'comfort woman'이라 하면, 영 기분 더럽다. 상대방을 기쁘게 한다는 소위 '기쁨조'를 의미하는 까닭이다. 그래서 이도저도 다 싫다 해서, 그리고 그 실상을 온전히 전한다 해서 새로 등장한 말이 '일본군 성노예'인데 이걸 영어로는 'Japanese military sexual slave' 등으로 옮기기도 한다.
한데 지금은 사정이 어떤지 모르겠지만, '일본군 성노예'라는 말을 다름 아닌 위안부 피해할머니들이 경기를 일으켰다. 그렇지 않겠는가? 성노예라고 하면, 그 이미지가 너무 원초적으로 강렬하게 와닿지 아니한가? 그때는 그래서 차라리 위안부라는 말을 선호했다.
그 개념이 지칭하는 바는 같은데, 어떤 말, 어떤 언어를 구사하느냐에 따라 왕청나게 무게감과 이미지가 달라진다. 내가 기자 교육 받을 적에 세뇌하는 지침 중 하나가 동의어 반복을 피하라는 말이 있거니와, 예컨데 '역전앞'은 틀리니 '역전驛前'이라 쓰야 한다고 강박 윽박하곤 했으니, 아마 지금도 그러한 줄 안다. 하지만 이는 아주 틀린 생각이다. '前'과 '앞'은 다르다. 그 한자어 새김이 '앞'이라 해서 '역전앞'이 역앞앞'이 되는 것은 아니다. 역발상을 해야 한다. '역전'이라 하면, 그것이 순한자라, 그 의미가 확연히 닿지 않으니, 이른바 동의어를 반복함으로써, 그 의미를 온전히 하고자 해서 나온 발상이 '역전앞'인 것이다.
저리 주장하는 사람들은 언어학을 모른다. 언어학은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지를 철학적으로 궁구하는 학문이며, 왜 틀리는지를 구명하는 학문이 아니다.
인류가 탄생한 이래, 그리고 단군이 이 땅에 디딘 이래 '같은 두 개 혹은 그 이상'은 말 혹은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을 지칭하는 개념을 표현하는 '비슷한' 말 혹은 단어가 있을 뿐이다. '앞'과 '前'은 전연 다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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