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이제 쿄토의 마지막 장면으로 히데요시 시대.
임진왜란 직전인 16세기 후반 모습이 되겠다.
이 시대가 되면 헤이안쿄平安京 시대 조방條坊의 모습은 남아 있고
전국시대 말이 되면 시가지 규모도 상당히 회복했지만
성 외곽 모습은 이미 헤이안쿄와 같은 정방형은 아니다.
히데요시는 쿄토 영역을 구분하기 위해 성 둘레에 해자를 파고 그 흙으로 토담을 쌓았는데 이를 오도이御土居라 한다.
그런데 오도이로 둘러싸인 쿄토 모습이 뭔가와 닮지 않았나?
결국 도시가 위치한 자연적 지리적 공간을 찾아 안착하면 이런 모습이 되지 별 뾰족한 수 없다 이거다.
이것을 자연과의 융합을 꾀한 뭐 어쩌고 하는 식으로 미화할 수도 있겠고,
또 조방제를 강력한 왕권의 상징으로 미화할 수도 있겠지만
진실은 이도 저도 아닌
전제왕권 이데올로기의 구현을 위해 강제로 구획한 도시가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자연적인 모습을 찾아 회귀하는 역사적 사실
그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이 뜻이다.
반응형
'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선과 관련이 있는 조선 막사발의 미 (30) | 2024.01.20 |
---|---|
쿄토의 현재모습에서 과거를 보기 (1) (0) | 2024.01.20 |
전국시대의 시작과 쿄토: 오닌의 난[応仁の乱] 전후 (1467) (0) | 2024.01.20 |
일본의 천도: 새로운 땅 찾기 (0) | 2024.01.20 |
책을 탈고하며 서문을 쓰다 (0) | 2024.01.2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