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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 기자? 기뤠기?

태안 앞바다가 바닷속 경주가 되기까지 (1) 1981년의 사건

문화재 측면에서 태안 앞바다를 요즘은 흔히 '바닷속 경주'라 부르거니와, 이곳이 그렇게 등장하는 흐름을 정리하고 싶어 우리 공장 내부 검색을 돌려봤다. 일단 검색어로는 '침몰 선박 태안 청자'를 넣어봤다. 그 결과를 추리기 전에 하나 해둘 말이 있다. 

첫째, 우리 공장 기사 DB화가 90년대 중반 이전에는 얼마나 철저한지 현재로서 내가 확인키는 힘들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1980년 언론 통폐합에 따른 연합통신(현재의 연합뉴스) 출범 이후 초반기 대략 15년 정도 구축한 기사 DB에는 구멍이 숭숭 뚫렸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우선 말해둔다. 


태안 앞바다서 건져올린 보물


다음으로, 다른 검색어들로 같은 작업을 진행할 때는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었으면 한다. 

그럼에도 이 작업 결과는 태안 앞바다가 '바닷속 경주'로 떠오르는 과정을 대략이나마 훑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없지는 않다. 내친 김에 다른 언론사 관련 DB 자료도 활용했으면 하지만, 이리되면 작업 분량이 엄청 커져 그런 여력이 나한테는 현재로서는 없다. 

하지만 언론사들의 언론사를 자임하면서 거의 모든 분야 뉴스를 다루는 연합뉴스는 지면 혹은 화면 제약이 심한 신문 혹은 방송과는 달리 그런 데서 훨씬 자유로운 까닭에 무엇보다 관련 기사 생산량이 여타 언론사를 압도하므로, 연합뉴스 보도에 드러나는 흐름이 해당 분야 흐름을 대별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본다. 

이런 점들을 염두에 두고 저 검색 작업을 수행하니, 태안 앞바다가 도자기 보고로 떠오르기 시작한 시점은 의외로 빨라, 통상 알려진 2000년대가 아니라 1980년대라는 사실이 무척이나 흥미롭다. 


침몰한 고려 보물선 부재


1981년 8월 22일자 보도다. 

27일까지 現地探査 泰安앞바다 침몰 宝物船

(安興=聯合) 문공부 문화재관리국은 忠南 瑞山군 近興면 馬島 앞 서남쪽 3백m지점 泰安반도 근해 수심 20m 해저에 고려청자 등 1천여 점의 자기류와 이를 싣고 가다가 침몰됐을 폐목선이 있을 것으로 보고 21일부터 오는27일까지 1주일간의 예정으로 현지탐사작업에 착수했다.

문화재관리국은 첫날인 21일 하오 조사단장 金正基 박사(문화재연구소장)와 문화재관리국 직원 2명, 심해 스쿠버 따이버 3명, 잠수보조원 3명, 仁川 소재 漢星샐미지 회사 소속 난파선 인양 선박 청조호(40t) 등을 현지에 급파했다. 

관계자와 선원 등 20여 명을 태운 탐사선은 이날 하오 3시40분께부터 5시까지 1시간여에 걸쳐 근해상에 부이(繫船浮標)를 띄우는 등 유물탐사를 위한 기초작업을 끝낸 후 22일 상오 7시께부터 다시 현장에 나가 잠수부들이 해저에 들어가 침몰 목선과 자기류의 위치확인 등을 했다.

金박사는 『이번 조사에는 수중촬영시설 등이 동원되고 新安해저보물선 탐사작업에 참여했던 문화재관리국 전문직원이 24일께 합류,직접 해저에 잠수해 조사하게된다』고 말했다. 끝


고려 조운선 복원도


90년대 중반 이전 태안 해전 문화재 상황으로서는 현재 검색되는 기사가 이것이 유일하다. 이때 성과가 어땠는지는 적어도 우리 공장 기사로는 현재 더는 추적이 어렵다. 

다만, 이미 80년대에 태안 앞바다가 그런 조짐을 농후하게 보인 사실만을 기억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