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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 기자? 기뤠기?

선택한 삶, 선택된 삶



혹자는 내가 문화재에 대한 열정이 유별나거나 남다를 듯 하겠지만, 이쪽엔 미련 국물도 없다.

어쩌다 보니 이 길로 들어섰을 뿐이요, 한때는 가장 잘 할 것 같은 일이라 해서 물불 안 가리는 시절도 없지는 않았으나 미련이 없다.

대학 졸업 무렵 무엇이 되어 볼까 하다가 일반 회사원은 싫고, 그렇다고 나 같은 촌놈들이 흔히 선택하는 고시 공무원도 싫어 그나마 남들한테 덜 굽신거릴 게 무엇이 있냐 해서 선택한 길이 기자였다.

나는 지금은 연합뉴스로 간판을 바꾼 연합통신이 어떤 덴 줄도 모르고 입사했다. 기자 준비하던 친구들이 우수수 연합통신 지원하기에 원서 내고 시험 쳐서 용케도 기자가 되었다.




그 시절 초창기엔 경제 쪽 관심이 많아 이쪽으로 전문성 파볼까 해서 관련 책도 많이 찾아 읽기도 했지만, 나는 선택권이 없어 느닷없이 부산지사로 발령 내는 바람에 그쪽으로 갔다.

나로선 선택한 삶이 아니었기에 부산 생활 1년은 지옥과도 같은 나날이었다. 당시만 해도 지사 발령은 은퇴할 때까지 지사 근무였으므로 왜 나한테 그런 길이 주어졌는지 모르겠다. 나중에 당시 사장한테 들은 얘기는 있으나, 용납할 수 없는 논리였다. 

지금도 그렇거니와 그때도 본사와 지사 기자를 따로 뽑았거니와, 우리 땐 지사 티오가 없었음에도, 느닷없이 지방으로 발령냈으니 그 생활 하루하루가 고통이었다.

그럼에도 내가 그 생활을 겨우 견딘 이유는 목구녕 포도청 때문이라, 이미 연합통신 이전 먼저 자리를 잡은 한국관광공사 생활을 청산하고선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려 굶고 살았다. 신용카드도 정지되어 반년 만인가 연합통신 입사하고서 풀렸다.

그런 나날들에 겨우 서광이 비치기 시작했으니, 이듬해 YTN을 개국하면서 대거 인력이 방송으로 빠져나가자 인력 누수가 심한 연합통신 모기업에서 지방 인력을 대거 서울로 징발했으니, 나는 지금도 내가 왜 그 징발대상에 포함되었는지 모른다.




선택한 길은 아니었으되 원한 길이기는 하다는 묘한 상황이 연출되었으니, 아무튼 나는 그리해서 1년만에 지옥에서 탈출했다.

한데 날더러 어느 부서 가고 싶냐 의례적 물음이 왔으니, 나한테 무슨 선택이 있겠는가? 이미 발령 전에 체육부 간단 말 파다했으니 나로선 아무데나 보내주십시오 하는 말 외엔 대안이 없었다.

체육부는 내가 부산지사만큼이나 증오한 일이었다. 왜냐 묻는다면 나는 답이 없다. 아무튼 때려죽여도 체육부는 싫었다.




그런 또 다른 지옥생활 2년 반을 하고는 사회부로 갔다. 이는 내 선택이었으되 원한 삶은 아니었다. 그래도 경찰기자는 한번은 해야 할 듯해 의무 복무로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 사회부 딱 2년 복무 연한을 채우곤 문화부로 왔으니 98년 12월이었다.

그렇다면 문화부는 내가 원했는가? 선택은 했으되 원한 길은 아니었다.




마침 그때 문화부장이 날 붙잡고 부탁하기를 "지금 문화재가 판판이 물 먹고 있어 너가 와서 좀 막아줘야겠다" 해서 그런 제안을 받고는 하루이틀 고민하다 간다 했을 뿐이다. 날 필요로 한다 하니, 그것을 물리치기도 힘들었다. 

내가 무에 문화재나 학술에서 두각을 나타냈기 때문이었겠는가? 그나마 그쪽 분야에 조금은 특화했다 해서 그리 요청한 모양이라, 그리 되었을 뿐이다.

그맇게 17년이 흘러 나는 문화부서 쫓겨나고 이내 해고되었다.



2년만에 다시 돌아오고 이내 촛불혁명으로 세상이 바뀌어 쫓겨난 전국부에서 잠시 일하다가 문화부장으로 발령받아 지난해 4월에 문화부로 복귀했다.

해직기자라 해서 이번에도 예의상 어딜 가고 싶냐는 말이 있기는 했지만 나한테 선택권은 없었다.

다만 내가 하나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문화부장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공장에서는 아마도 본래 자리라고 여긴 문화재 전문기자 복귀였던 듯 하거니와, 내가 그쪽에 미련 혹은 열의가 있다 생각해서 그리했을 것이로되, 실제 그런 식으로 제안이 오긴 했지만 나는 단호히 거부했다.

그 자리는 다시는 쳐다보기도 싫다고 했다. 내가 입사 이래 처음으로 내 의지를 강하게 표출한 유일한 순간이 아닌가 한다. 그러면서 다른 자리를 요청했지만 그것이 거절되고 나한테 떨어진 자리가 문화부장이었다.

나는 문화부장도, 문화재 전문기자도 미련 없다. 다만 현재 주어진 문화부장을 그런대로 해서 문화부가 그런대로 괜찮은 부서다 하는 인식 정도는 심어주었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부장은 1년이면 족하고 실제로 우리 공장에선 요새 부장 생명이 그렇다.

부장질 1년 이상 하는 부장은 난 문제가 많다고 본다. 제정신으로 이 생활을 1년 넘게 한다는 게 나로선 기이하기만 하다. 무엇보다 체력이 버텨날 재간이 없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선택한 삶이라 해서 그것이 꼭 원한 삶은 아니다.
돌이켜 보니 내가 선택한 삶은 가뭄에 콩난 듯 하고 내가 원한 삶은 사하라 사막에 난 콩과 같다.

그런 삶이었기에 이젠 내가 선택하고 내가 원한 삶을 살고픈 맘 간절하다. 

나중에 후회한다 해도, 내가 원한 삶을 살고 나서 하는 후회라면, 조금은 낫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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