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우리나라도 당연히 조선시대에 양전量田을 했다.
그리고 양전의 결과도 기록에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양전, 곧 땅 측량을 어떻게 했을까.
일본의 경우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했다는 태합검지太閤檢地-.
우리나라 치면 양전의 방법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서
땅 넓이를 쟀는지를 대충 아는 것으로 안다.


물론 어떻게 땅 너비를 쟀는지 모를 수도 있을 것이다.
자료가 없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할 수 없는 일이다.
문제는 궁금하지도 않다면 그것이 문제겠다.
대동여지도 해안선을 어떻게 쟀는지 하나도 궁금하지 않은 것이나,
양전을 했다는 건 아는데 그 땅 어떻게 쟀는지도 모르고 궁금하지 않다는 건
서로 상통하는 이야기다.
아래는 일본의 대동여지도라 할 이노 다다타카[伊い能のう 忠ただ敬たか, 1745~1818]가 만든 대일본연해여지전도大日本沿海輿地全圖다.
김정호가 대동여지도가 만들 때보다 더 빠른 19세기 초반의 지도이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어떻게 그렸는지 저쪽 친구들은 다 안다.

모르는 것은 그럴 수도 있고 어쩔 수 없는 경우도 있지만,
궁금하지도 않는 것은 정말 구원할 방법이 없다.
학문의 세계에서 궁금한 것이 없다는 건
구원의 길이 완전히 끊긴 무간지옥으로 떨어지는 일과 같다.
반응형
'노년의 연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대동여지도, 한반도 전체까지 이야기할 것도 없다 (0) | 2026.02.25 |
|---|---|
| 어떻게 그렸는지도 모르는 대동여지도 (0) | 2026.02.24 |
| 라키가리 보고서 2권을 준비하며 (0) | 2026.02.22 |
| 그 시절 프랑스문화원 (0) | 2026.02.20 |
| 나이들어 해야 할 것 말아야 할 것 (0) | 2026.02.1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