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 잡문 삼아 쓴 글에
필자가 생각하는 한국사의 키워드 1은 가난,
2는 나라가 망할지도 모른다는 불안, 두 개를 들었다.
이 두 개가 실제로 합쳐져 역사에서 작동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공적 분야의 강화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여말선초.
북로남왜로 상징할 만한 외란이 남북에서 밀어닥칠 때,
이런 환경에서 "송곳 꽂을 만한 땅도 없다"라는 말은
농민들이 농사 지을 땅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이 외란을 방어하려면 재원이 필요한데
이 재원을 마련할 길이 없다는 뜻이 되겠다.
그러면 나올 수 있는 해결책은
사전혁파와 공전강화 밖에 없다.
그것이 필자가 보는 바 과전법체제다.
고려초기 전시과체제를 보자.
왜 전시과체제가 나왔을까?
라말여초를 풍미하던 공전의 붕괴를 두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거란의 침공 때문이다.
거란의 침공이 계속 되던 시기와 전시과체제가 정비되는 시기가
거의 방불하게 전게 된 것은 절대로 우연이 아니다.
한국사에서는 없이 살던 시절에
외란이 너무 많고 심각했다.
이런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 많지 않았는데
그 몇 개 안 되는 솔루션 중 하나가 사전의 억제 공전의 강화,
그리고 이를 통한 공적 방어력의 증강이었다.
내부의 싸움 때문이 아니라 외적을 막기 위한 것으로
공동체의 안전 때문에 사전의 제한과 공전의 강화가 용인받았다고도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일본사와는 달리 한국사에서는
한국판 "장원정리령"이 성공리에 이루어져
고려시대에는 전시과제도가 탄생하고,
조선시대에는 과전법 체제가 탄생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이런 사전 제한과 공전 강화는 그 자체 유일 선이었는가?
그것은 아니었고 우리 역사는 이에 대한 준엄한 청구서를 받게 되고
이는 20세기 초반 망국까지 이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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