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 공부를 시작하려는 분들이 보통 《논어집주》를 붙들고 시작하지만, 끝까지 일독하는 이는 거의 없다.
논어가 쉬운 책이면 주희를 비롯한 수많은 이들이 주석을 달 필요가 있었겠는가? 대단히 어려운 책이어서 수십 번을 보았어도 문리를 다 깨치지 못한 부분도 많다.
나는 한문 공부를 하고싶다는 분들에게 자신의 관심분야 책을 선정해서 읽으라고 권한다. 자신이 잘 아는 분야의 책을 골라 인명, 지명, 고유명사에 밑줄만 그어 놓고 보면 번역할 동사, 형용사, 부사 등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오고 반복하다보면 문리가 빠르게 차츰 뜨인다.
전근대 유자들의 글은 사서삼경을 알지 못하면 이해하기 어렵다. 좀 더 심화된 과정으로 가려면 사서삼경은 반드시 읽어야 한다. 그러나 옛 어른들처럼 암송할 필요는 없다. DB가 잘 구축되어 쉽게 검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서 구절을 축약한 표현 등을 파악하여 알아내려면 경서를 찬찬히 두어 번은 읽어 두어야 찾을 수 있다.
한문 공부를 시작하는 분들에게 권하는 것은 율곡 이이의 〈동호문답(東湖問答)〉이다. 율곡은 글을 참 쉽게 쓰고, 말하고자 하는 핵심을 뇌를 열어 잘 정돈해서 넣어주는 느낌이 든다.
각자 방법을 달리할 수 있겠지만, 먼저 번역본을 한 번 빠르게 읽고, 다음에는 원문만 놓고 읽고, 마지막으로는 원문만 놓고 직접 번역해서 원고로 작성해 보기를 권한다. 눈으로만 읽어서는 다 아는 듯하지만, 직접 번역 원고로 작성하면 놓친 부분도 깨치게 된다.
게다가 〈동호문답〉을 읽으면 조선 200년의 문제점을 잘 지적하여 조선전기사를 잘 공부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 그가 제시한 개선안이 이후 300년 조선 역사를 관통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고전번역원에서 원문과 번역문을 쉽게 접할 수 있으니
http://db.itkc.or.kr/inLink?DCI=ITKC_BT_0201B_0130_010_0010_2009_001_X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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