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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THESIS

한 줄로 길쭉하게 판 빼빼로 모양 신라 무덤 대구 구암동에서 출현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3. 1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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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시피 팔거산성 기슭에 무덤들이 자리잡고 있다.

 
 
이 대구 구암동 고분군 이라는 데는 이 항공사진이 증명 혹은 암시 혹은 직시하듯이 그 꼭대기를 정좌한 팔거산성이라는 고대 성곽과 뗄 수가 없다.
 
실제 발굴 조사 성과를 봐도 산성을 축조 운영한 시기랑 어긋나지 않은 것으로 알며, 무엇보다 그것이 자리잡은 데가 둘 사이 밀접한 연관성을 말해준다 하겠다. 

문제는 산성이 있고 그 기슭에 산성과 관련한 사람들이 묻힌 집단 매장지가 있으며, 그 아래 강과 만나는 기슭 지점 어딘가에는 저들이 삶을 영위한 도시 유적이 있어야 하지만, 그를 엿볼 만한 뚜렷한 고고학적 흔적을 확인했는지는 모르겠다. 

이런 일이 말처럼 쉽지 않은 까닭은, 그 마을 혹은 도시 유적은 걸핏하면 홍수와 같은 자연재해를 만나 통째로 날아가거나 산사태에 아주 저 밑으로 묻혀버리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지점이라면 후세 사람들이 가만 놔둘리 만무한 법이라, 계속 재개발을 진행하는 까닭이다.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니 이곳을 위탁 관리 중인 대구 북구청이 경북문화재단 문화재연구원(원장 박재영)이라는 문화재조사기관에 의뢰해 근자 제304호분이라는 이름으로 구별하는 무덤을 조사했다 하는데

두 가지 정도 의미 부여를 할 수 있겠다 싶다. 

첫째 다른 구암동 무덤들에서는 일찍이 보기 힘든 구조를 보였고, 둘째 주변에서 더 많은 동시대 무덤들이 확인됐다는 점이 있겠다.

후자와 관련해서는 바로 앞 사진을 참조해 주기 바란다. 가운데가 304호분이라는 데인데, 그 한쪽 혹은 앞 아래서 큰 무덤 봉분이 하나씩 더 발견됐지만, 자세히 보면 더 많은 무덤이 포진한다. 이건 아래서 다시 살핀다. 

조사단은 이번 조사 최대 성과를 독특한 무덤 구조를 들었으니, 이르건대 시신을 묻는 공간인 이른바 주곽主槨과 껴묻거리를 넣어 두는 공간인 이른바 부장곽을 공중에서 내려다 보면 한자 날 일日 자 모양으로 한 줄로 긴 축을 나란히 이어 붙인 모습으로 드러났다고 한다. 

조사단은 이런 모습이 삼국시대 신라 집단무덤인 구암동 묘지에서는 처음으로 드러났다고 덧붙였다. 

이 소식을 전한 내 전직 직장 관련 보도에 첨부한 조사단 배포 사진을 보면 아래와 같다. 
 


이걸 보면 이른바 매장주체부는 남북 방향으로 장축을 마련했음을 본다. 북쪽 머리 맡에다 부장곽을 두었다. 이 길쭉하게 상자 모양으로 판 지점에 격벽이 보이는데, 이것이 주곽과 부곽을 가르는 경계표시다. 

저런 경계는 보통 둔덕처럼 마련하지만, 이곳은 보니 그냥 판돌 하나 끼운 느낌이다. 보는 사람 기준 오른쪽 상대적으로 더 긴 쪽이 시신을 묻는 주곽, 그 반대편 작은 데가 껴묻거리를 위한 지점이다. 

구암동 고분군에서 그간 조사한 무덤들을 보면 저러한 주·부곽은 공중에서 내려다 보면 숫자 11자 모양으로 긴축을 나란히 놓은 모습이 집중 확인됐다.

그것과 달리 이건 긴 축을 따라 한 줄로 놓았으니, 저리 되면 봉문이 길어지는 단점이 생긴다. 간단히 말해 11자형에 견주어 공간 효율성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주곽과 부곽을 배치하는 시스템을 간단히 도해하면 앞과 같다. 놓은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어 편의에 따를 뿐이다.

중요한 것은 부장곽을 따로 마련한다는 것 아니넸는가? 왜 부장곽을 만드는가? 부의품을 위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 배치 모습이 무엇이건 주곽과 부곽은 상대적인 크기가 거의 예외없이 시신 공간인 주곽이 큰데 이는 말할 것도 없이 그곳이 무덤 주인이 묻히는 큰방인 까닭이다.


익숙한 동서남북 배치로 고치면 이렀다.



304호분의 경우 시신은 머리는 북쪽에다 두었을 것이다.

이는 중대한 변화다.  6세기 초중반 무렵을 넘어가면서 신라 무덤은 획 바뀐다. 무덤 장축도 남북으로 바뀌고 머리는 북쪽에다 둔다. 시계 반대 방향으로 무덤이 돌아 완연한 중국식이 된다.

그 민감한 변화를 보여준다.

이는 왜 바뀌었는가 하는 거대한 질문을 던진다. 고고학은 바뀌었다는 현상만 기술할 뿐 왜를 대답하지 못한다.

왜? 현상학만 했기 때문이지 인식론 존재론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금 고고학을 나는 개돼지학으로 부른다.

왜? 꼽아? 꼽으면 왜를 묻고 답해얄 거 아닌가?

한국고고학이 말하는 한국고고학은 단순시시하기 짝이 없다.

난 일년이 걸렸지만 나한테 교육받음 일주일 늦잡아도 한달이면 끝난다.

중국 고고학에서는 이런 부장곽이 대체로 사람 얼굴을 주인공으로 친다면 그 얼굴을 중심으로 양쪽 귀에 해당하는 지점에서 발견된다 해서 이실耳室이라 부른다.

하지만 우리는 대체로 부장곽이 한쪽에서만 발견되고 더구나 그 지점은 꼭 귀 부분에 해당하는 것도 아니어서 저리 부를 수는 없다.

암튼 조사 결과 304호분은 여러 차례 도굴되어 봉분이 훼손되었으며 이에 따라 복원 정비의 시급성이 대두되어 이번에 제대로 허가받은 도굴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도굴과 발굴은 당국의 허가를 받았으냐 아니냐로 갈릴 뿐이다.

이에 대구 북구청은 문화재 보수정비사업의 일환으로 지난해 9월부터 정밀발굴조사를 시작하여 현재 304호분을 중점 조사하는 한편 그 주변 지역도 발굴조사를 벌여 302·303·305호분이라 이름한 데도 한꺼번에 다 깠다고 한다.

이걸 보면 이번에 조사한 데는 304호분 말고도 무덤 세 곳이 더 있음을 본다. 

한데 이것 말고도 더 있는 모양이다. 조사단에 의하면 이번 발굴조사 결과 304호분은 다른 고분과 연접한 것은 물론이요, 이를 포함한 저들 네 무덤을 주무덤이라 한다면, 이들 주무덤에는 모두 6곳에 이르는 다른 무덤도 연결돼 있음을 확인했다고 한다.

무덤 형태로 보면 이른바 돌무지덧널무덤 적석목곽분이라 돌로써 시신이 안치될 공간을 만들고 그 위에 봉토 역시 돌로 쌓은 형태라고 한다. 돌로 덮었다지만 어찌 돌로만 덮었겠는가? 흙을 덧씌웠다.

조사단은 이와 같이 앞서 만든 무덤에 덧붙여가며 다음 무덤을 만드는 방식(연접축조 방식)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고 의미 부여를 한다.

이를 두고 조사단은 학계 연구 성과에 따르면 이러한 무덤 축조 방식은 무덤 피장자 상호 간의 친연관계를 나타내는 방식 중 하나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하지만, 미안하나 이는 하나마나한 말이다.
종족공동묘지지 그렇다면 이곳이 현충원 묘지이겠는가? 

다음으로 도굴 피해를 극심하게 봤다지만, 그래도 건진 유물은 없을까? 

고분의 내부에서는 굽다리접시, 목긴항아리 등의 토기류와 유자이기, 재갈, 철부 등의 금속류 등 250여 점이 출토되었다. 

이렇게 말한다.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이 무덤은 언제쯤 만들었을까? 

출토유물의 특징과 속성으로 볼 때 고분의 조성 시기는 6세기 전반~중반에 해당하며 기존에 조사된 구암동 고분군 중에서는 제일 늦은 단계로 파악된다고 조사단은 판단하고 있다.
 
#대구구암동고분군 #적석목곽분 #경북문화재단문화재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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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에 내가 도면을 잘못봐서 심현용 박사 지적에 따라 원고를 고친다.

내 불찰이다.

늙어서라고 변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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