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세력 교체기에 신구 권력이 충돌하는 과정에서 저 말이 튀어나왔으니, 신권력 윤석열 쪽에서 대통령 집무실로 청와대를 비우는 대신에 용산 국방부 청사를 쓰기로 했지만, 구권력 중심추인 문재인이 이런 이전 계획 발표를 듣고는 '격노'했다는 말이 새어 나온 것이다.
다만 이런 일이 실제로 있었는지, 더 간단히 말해 진짜로 문재인 반응이 격노할 만한 수준이었는지 아닌지는 확실치 아니하니, 우리 공장 보도에서는 그 어떤 대목에서도 격노 운운하는 대목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확인되지 않은 설에 지나지 않는다고 적어도 우리 공장에서는 판단한 듯하다.
그 진실 공방이야 차치한다 해도, 현대 정치판에서 저런 말이 드물지 않게 등장하는데, 내가 잘못 이해했을 수도 있지만 그때마다 저 격노라는 말이 현대 군주, 곧 최고 권력통치권자의 전유물로 굳어지지 않았다 하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그렇다면 격노激怒란 무엇인가? 이는 말할 것도 없이 激과 怒를 합성한 합성동사이면서, 그것이 그대로 명사로 전용되기도 하거니와, 激은 물수 변이 의미를 제한 혹은 한정하는 부수자로 사용된 데서 볼 수 있듯이 물결이 친다는 뜻이며, 怒는 마음 心을 부수자로 내세운 데서 엿보듯 주로 심적 안정 상태가 저해받는 상태를 말한다.
요컨대 저 말은 고요한 물결에 파도가 쳐서 그에 따라 마음이 분노하는 상태로 이동하는 일을 말한다.
저 말이 등장하는 맥락을 보면 영어식 개념으로 보면 타동사와 자동사 둘 다 용법이 있어 전자의 경우는 분노케 한다는 뜻이며, 후자는 그 스스로가 분노한다는 뜻이다.
현재 우리한테 주어진 자료에 의하건대 저 말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데는 사마씨 천이 저술한 《사기史記》라는 문헌이니, 그곳 진섭세가陳涉世家라는 데를 보면 다음 구절이 보이니
吳廣素愛人, 士卒多為用者。將尉醉, 廣故數言欲亡, 忿恚尉, 令辱之, 以激怒其眾。
이는 대략 아래와 같은 뜻이다.
오광은 평소 사람(특히 부하)들을 아껴 사졸 중에서는 그를 위하는 이가 많았다. 어떤 장위(장교)가 (하루는) 곤드레만드레 취하자 오광이 그 장교한테 일부러 여러 번 도망가고 싶다 말했으니, 이는 그 장교의 화를 돋구어 자신을 모욕하게 함으로써 (자신을 따르는) 무리를 분노를 격발케 하고자 함이었다.
이 경우는 타동사로써, 누군가를 분노케 한다는 뜻이다. 오광이 스스로 매를 버는 행위를 함으로써, 또 그리하여 그것을 빌미로 자신의 상관이 그를 부당대우하는 모습을 연출함으로써, 자신을 따르는 부하들의 화를 돋구어 결국 그 장교를 제거함으로써 스스로 권좌를 탈취하고자 했다는 뜻이다.
그에 반해 아래 《후한서後漢書》 권 제18 오한전吳漢傳에 보이는 다음 구절은 맥락은 거의 같으나 자동사라는 점에서 다르다.
於是軍士激怒,人倍其氣.
이에 군사들이 스스로 분노하는 감정을 일으키고, 다른 사람들은 그 사기를 배가하게 되었다.
이는 저 밑에 군사들이 무슨 일을 보자 분노하는 감정을 스스로 일으켰다는 뜻이 된다.
서진 시대 문사 간보幹寶 저작으로 현전하는 귀신 씻나락 까먹는 이야기 모음집인 《수신기搜神記》 권 제1을 보면 후한이 분멸하면서 장강 유역 일대를 중심으로 吳를 일으키는 손책孫策에 관한 일화 한 토막이 소개되거니와
策因此激怒 言:‘我爲不如吉耶? 而先趨附之?
손책이 이에 분노하며 말하기를 "내가 우길于吉만 못하다는 말인가? 그래서 먼저 그에게 달려가 아부하려 하는가?"
이 경우도 자동사라, 손책이 무슨 말을 듣고는, 아마도 우길과 비교하는 말을 들었는지, 그것이 기분 나빠서 열 열라 받아서 저리 호통쳤다는 뜻이니 우길于吉은 판본에 따라서는 간길干吉이라고도 하는 인물로 도교 역사에서는 매우 중요한 인물이라, 교단 도교를 창시한 사람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이로써 보건대 그 옛날 저 말이 등장하고 그것이 통용하는 맥락을 보면 누구나 격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찌된 셈인지 시간이 한참이나 흘러 21세기 대한민국에서는 오직 대통령만이 독점하는 행위가 되었으니, 이것이 승급인가 제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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