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探古의 일필휘지

석봉 글씨에 우암이 부친 글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1. 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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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자대전을 읽다가>

우암 송시열(1607-1689)의 제자 나양좌(1638-1710)가 어느 날 석봉 한호(1543-1605)의 글씨를 스승에게 가지고 왔다.

대대로 내려온 것이라면서 몇 자 발문을 적어주십사 하고 내밀었는데, 우암은 다음과 같은 글을 지어준다.

석봉石峯의 글씨는 집집마다 소장되어 있었으나, 이제 와서 시대가 조금 멀어지고 또 여러 차례 병화兵火를 겪고 보니, 점차 처음처럼 흔하지 않다. 이번에 나현도羅顯道가 그의 증왕고曾王考 보덕공輔德公이 간직하였던 것을 내보이면서 말하기를,

“이는 나의 선고先考 목사공牧使公이 난리를 만나 피란다니면서도, 보덕공이 보배로 여기었다 하여 늘 등에 짊어지고 다닌 때문에 지금까지 보존되었습니다.”

하였다. 아, 그 보수保守가 여기에 이른 것은 이 어찌 조상을 애경愛敬하는 일단一端이 되지 않겠는가. 지금 현도에 이르기까지 4세世가 되는데, 글씨가 조금도 파손된 데가 없으니, 이처럼 잘 보수한 이와 아울러 후손에게 전할 것을 의심치 않는다.

숭정 갑인년(1674) 4월 일에 쓴다.


- <송자대전> 권147, 발跋, 석봉의 글씨에 붙인 발문[石峯筆跋]

그런데 어째 석봉의 글씨 솜씨가 어떠하다거나, 무슨 내용의 글이었다거나 하는 말은 한 마디도 없다.

하기야 신사임당의 그림을 보고 그 수준에 감탄하면서도 "율곡 선생을 낳았음이 마땅하다."(<송자대전> 권146, 발, 사임당이 그린 난초에 붙인 발문[師任堂畫蘭跋])고 결론을 낸 분이니, 사자관寫字官 석봉의 글씨에 대해서는 그리 언급하고 싶지 않았을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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