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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보 이야기

20세기 족보를 보며 하는 착각

by 신동훈 識 2026. 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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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성보, 혹은 만가보는 각 집안에서 잘 나가는 혈족들만 추려 만든 족보다. 각 문중 족보가 신분 가리지 않고 동족은 모두 싣게 되면서 소위 말하는 제대로 된 사족만 추려 만든것이 만성보萬姓譜, 혹은 만가보萬家譜다. 만성보라고 해서 모든 집안 대동보를 다 실어놨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20세기 족보는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수백년에 걸친 작업을 통해 수정되고 고쳐지며 완성된 결과이다. 

이 족보를 우리는 거꾸로 뒤집어 보면서, 

자신의 "집안"과 "가족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족보가 성립되는 과정에서 지파가 계속 추가되며 확장되어 가는 과정을 모르고, 

족보에 실린 이들의 절대 다수는 서자 혹은 서자의 후손으로 사실상 금고된 사람들이라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면, 

20세기 족보를 보면서 많은 사람이

"우리는 양반의 후손인데 그 후 벼슬이 끊겨져 잔반이 되었다"라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진실은 다르다. 

벼슬이 끊겨서 잔반이 된 것이 아니고, 

권력과 재력을 누리던 양반들에 끼지를 못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과거 급제도 없고 소과 입격도 없으며, 

무과급제할 여력도,

공명첩으로 명예직 품계도 하나 얻을 돈도 없어 

잔반화하는 것이다. 

따라서 벼슬이 끊겨서 잔반화한다는 것은 

이유와 결과가 전도된 셈이다. 

처음부터 다른 이유로 잔반화하는 것이 이미 결정된 사람들이 

힘도 없고 돈도 없어 벼슬이 끊기는 것이다. 

이 원인과 결과를 도치해서 이해하면 안 된다. 

그리고 그 이유의 가장 큰 것을 들라면, 

높은 확률로 그 혈족은 조상 어느 시기인가에 

서자였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가 되면, 특히 영-정조 대에 이르면 

전체 인구 절반이 서자라고 하는 바, 

노비 빼고 나면 얼마나 많은 이들이 조상중에 서자가 있어 

서얼금고가 되어 있는 상황이었는지 상상도 하기 어렵다. 

이러한 상황은 임란 이후 족보를 계속 추적해 올라가면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생략하고 20세기 족보만 들고 보게 되면

이러한 과정을 전혀 알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조선전기에는 족보에서 제외된 혈족들이 

조선후기에 족보에 편입되면서 이를 "우리 문중"이라고 기억하고, 

"우리는 양반집 후손"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족보를 보고 조상을 기억하는 것은 결코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다만 20세기의 족보라는 것이 수백 년의 탈법과 고민과 저항, 그리고 타협의 산물이라는 것은 기억하고 있어야겠다. 

족보는 임란이후 20세기까지 한국인 대부분이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삶을 살고자 사투한 결과의 산물이지, 

명문 집안의 번영을 기억하기 위한 트로피가 아니었다는 점을 

이제 곧 설이 다가오니 한 번은 기억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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