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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 이야기/마왕퇴와 전국 초묘 미라

[능혜평凌惠平 미라] (1) 산동반도로 북상하는 미라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5. 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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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견 지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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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발견 지점에서 유의할 대목은 주로 장강 유역을 중심으로 중국 고대 미라가 나오는데 견주어

이 분은 상당히 북상한 지점을 정좌한다는 사실이다. 

산동반도 아래 끝자락이다.

바다랑은 비교적 가까운 지점이다. 
 

 

능혜평凌惠平은 2002년 중국 강소성江蘇省 연운항連雲港에서 드러난 서한 시대 여성 시신을 말한다.

중국에서는 신장위구르를 제외한 곳에서는 호남성湖南省 장사長沙 마왕퇴馬王堆 한묘漢墓 여성 시신과 호북성湖北省 강릉江陵 봉황산鳳凤凰山 한묘漢墓 남성 시신에 이은 세 번째 한나라 시대 습시溼尸다. 

중국 고고학을 보면 미라를 생성 원인으로 나누어 습시니 건시니 하는 표현들을 많이 쓰는데,

습시는 간단히 말해 물에 잠긴 상태로 출토한 미라로 보면 되겠다. 
 

연립식 주택 같은 느낌을 준다.



이 능혜평 시신은 2002년 7월 7일 오후 4시 무렵, 연운항 해주구海州区 구양진朐阳镇 쌍룡촌双龙村 화원로花园路 건설현장에서 발견됐다.

이 공사 현장에서 몇 개 세로 줄무늬가 있는 목판竖条木板 하나와 온전한 관 하나가 발굴되었고, 다음 날 세 개 관이 추가로 발견되었다.

연운항 박물관 사람들이 현장을 탐사하고는 이곳이 한나라 때 무덤이 있던 곳이며 발견된 관들은 서한 말기에 해당하는 것임을 확인했다.

조사 결과 이들 목관은 무덤 하나에서 나왔다.
 



더 조사 결과 이 무덤은 1혈 2곽 4관묘一穴两椁四棺墓라 해서, 무덤을 만들기 위한 구덩이는 하나로 파고선,

그 안에다가 덧널칸은 두 개를 만들고, 다시 그 세부로 들어가 그것을 어케든 칸막이 쳐서 목관 네 개를 우겨 넣은 것이다. 

이른바 연립십 주택 무덤인 셈인데, 이런 방식을 채택한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토지이용효율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돈 아끼려주고 저리 했다는 뜻이다.

같이 들어간 사람들은 일가족 아니겠는가? 

좀 이상한 점은 이렇게 하려면, 네 사람이 동시에 죽어줘야 여로 모로 편하지만, 그런 일이 실제 있었는지 모른다.

이례異例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네 사람은 각기 다른 시점에 죽었을 텐데,

그렇다면 그때마다 무덤을 까고서 닫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을 터인데 이런 의문들이 이 무덤에서는 어떻게 해결되는지는 좀 더 자료를 훑어봐야 한다. 

암튼 이 네 개 관은 보존상태가 아주 좋다.

이 네 관을 위치별로 따져서 구별해야 한다.
 

능씨혜평凌氏惠平 이라는 도장



왜? 그렇지 않으면 조사하는 고고학도들이 헷갈리기 때문이라, 사람이 태어나면 이름을 주어 구별하듯이 고고학 역시 그러하다.

개중 남쪽 덧널실南椁室 안쪽에 모신 관에다가는 넘버 4를 부여했으니,

그래서 이 분이 4호관4号棺이 되고,

북쪽 덧널칸北椁室 안쪽 관은 남쪽에서부터 북쪽으로 차례로 1호관, 2호관, 3호관이라는 구별 딱지를 붙였다. 

발견 직후 이들 관은 연운항시박물관으로 옮겨가 조사를 했다.

7월 9일, 박물관에서 3호 관 뚜껑을 열었다.

갈색 관 안에서는 시체가 발견되니 피부 대부분은 이미 갈색이며 일부는 회황색으로 변했지만 어느 정도 탄력은 있었다.

머리카락은 부분 탈모됐다.
 

2000년대 조사여서인지 이미 조사 방법 또한 상당히 발전했음을 본다.



시신은 길이 1.58m, 나이 50세 전후 여성이었다.

이 3호관에서는 '능혜평陵惠平'이라는 글자를 새긴 한 변 길이 1.3cm 거북이 손잡이 청동 도장龟钮青铜印章이 발견됐고,

이 밖에 옻칠을 한 사각형 그릇인 칠방합漆方盒, 칠선권漆线绕, 칠척漆尺, 칠침통漆针筒, 사유사이경四乳四螭镜, 의복소衣物疏, 참빗梳篦과 같은 물건이 나왔다.

기타 다른 세 개 관에서는 드문드문 있는 유골만 있었으며, 같은 무덤에서 동시 출토된 남자 주인 관에는 정사각형 거북이 손잡이 청동 도장龟钮青铜印이 하나 나왔지만 글씨가 너무 흐릿해 읽을 수 없다.

남자 주인 두개골은 보존 상태가 좋다.

이 남자 관 덧널판 안쪽에는 '동공東公'이라는 글자가 드러난다.

이 동공은 이 사람 이름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흔히 동왕공東王公이라고도 쓰는 신화상 제왕으로, 동방에 있으면 그쪽 세계를 나와바리 삼는다 해서 이러 일컫는 존재로,

그 반대편 서쪽은 아마존 땅이라, 그 아마존 여왕을 서왕모西王母라 한다. 

동왕공과 서왕모를 앞세운 신선 세계는 저 무덤이 등장했을 전한 말기에 극성을 구가하고 이후 동한시대에 더더욱 거센 돌풍을 일으키게 되는데, 이런 시대 분위기랑 밀접하지 않은가 한다.  

이 남자 주인 칸 출토 목독木牍이라 해서 나무 쪼가리에 적은 글들을 분석한 결과 당시 동해 태수东海太守, 하남 태수河南太守를 비롯한 지방관들이 아전들을 보내 장례식을 참관케 했다고 한다.

내가 계속계속 말하지 않았던가?

무덤 껴묻거리에서 조문한 사람들이 낸 부의품을 그리 주목해야 한다고?

부곽? 껴묻거리 공간?

내가 계속계속 말하지 않았던가?

그건 조의품들로 조문한 사람들이 성의 표시로 낸 물건들이라고?

한국고고학? 무덤고고학?

쏵 다 갈아엎고 처음부터 새판 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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