马王堆汉墓考古发掘50周年国际学术研讨会 “汉代医学研究”学术分会纪要
湖南宾馆会议中心2楼大会议厅
2024-08-18 14:00 to 2024-08-19 18:00
8月17-20日
马王堆汉墓考古发掘50周年国际学术研讨会 “汉代医学研究”学术分会纪要 | 湖南博物院
马王堆汉墓考古发掘50周年国际学术研讨会 “汉代医学研究”学术分会纪要
www.hnmuseum.com
요새 마왕퇴 관련 자료를 수거 배열 선별하느라 사납거니와, 그러면서 하도 정신이 사나워 내가 이러다가 마왕퇴 그 강시가 되지 않는가 하는 우려도 일거니와
그러는 와중에 검색에 저 소식이 걸린다.
마왕퇴馬王堆 한묘漢墓는 엄밀히 발견 기점으로 하면 우리 무령왕릉의 그것과 같은 1971년이요,
그것이 본격 발굴되시 시작한 시점은 1972년이라,
그 발굴 50주년이라 하면 2021년이나 22년에 했어야 하지만,
저네들 소식을 보면 그것이 완료된 시점을 기준으로 1974년을 잡아 저리 대대적으로 관련 행사들을 개최하지 않았나 싶다.
마왕퇴 한묘는 서한 시대 장사국 승상을 지낸 리창이라는 사람 일가부치 가족공동묘지라, 세 무덤이 확인되었으니,
그 발견 발굴을 기점으로 조사된 순서에 따라 차례로 1호묘, 2호묘, 3호묘라 이름하거니와
가장 먼저 발견되고 조사된 1호묘가 그 리창의 부인 신추라는 사람 무덤이어서,
이 무덤은 그 완전한 시체, 곧 미라가 발견되었다 해서 대서특필되며,
2호묘는 리창 본인 무덤이지만 정작 도굴로 다 털려 개털 신세다.
저들 부부의 아들로 아버지 관작을 물려받은 이 무덤이 3호묘인데,
이곳은 그 막대한 문헌을 쏟아내는 바람에 더더욱 유명해서 간단히 말하면 당시 도서관 하나가 몽땅 발견된 일에 비견한다.
이후 마왕퇴는 마왕퇴학馬王堆學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한 선풍을 일으키게 되는데,
그 분야도 실로 다종다양해서 역사학 고고학은 물론이고, 저 시체 연구에 발판을 삼은 의학계가 달라 붙어 총력을 기울였으며,
그 풍부한 출토 문헌을 기반으로 철학 동양의학, 교감학 등등 마수를 뻗치지 아니하는 분야가 없다시피 하다.
국내에서도 저를 기반으로 삼은 연구가 분량은 적지 않다.
특히 한의학계 움직임은 거의 필사적이어서, 각종 역주서 번역까지 이뤄냈으며,
그에 더불어 이른바 동양철학 전공자들도 활발히 달라 붙어 논의를 전개 중이다.
문제는 저 본령이라 할 고고역사학이라, 이쪽 움직임은 거의 깡통이라 불러도 손색없다.
논급은 하지만 그 심각성을 어느 누구도 제대로 알아차리는 이가 없고,
겨우 그 유물을 전시하는 호남성박물관과 간혹 그 발굴현장 한번 휙 들리고선 고작 한다는 짓이 무슨 논문 쓰는데 데코레이션으로 한두 번 논급하고 지나칠 뿐이니 이런 사정이 지금이라 해서 별반 다르겠는가?
저 마왕퇴는 중국 무덤이 아니다.
인류 보편하는 유산이다.
나아가 그 소위 한국사로 국한해도 고고역사가 발언할 기회가 많고, 무엇보다 저에서 개발하는 바가 무궁무진해서 저 하나만 매달려도 평생을 울거먹고 살 만한 소재다.
특히 내가 매양 하는 말이지만 위만조선 혹은 낙랑군을 논할 때 저 마왕퇴는 뺄 수도 없고 빼서도 안 된다.
그 아래 더 남쪽 비슷한 시대 남월왕묘와 다시 그 북쪽 북경 남쪽 만성한묘와 기타등등 다 버무려야 위만조선 낙랑군 이야기를 전개해야지만
고작 역사고고학이 하는 꼴은 평양 일대 죽어나사나 그쪽 토기쪼가리 귀틀집 타령이요,
시각을 넓혔다 해도 고작 한다는 짓거리가 저쪽 연나라 가서 그쪽 토기쪼가리 찾는 일밖에 없다.
그래서 낙랑이 보이고 위만이 보인단 말인가?
결코 보이지도 않고 볼 수도 없으며, 그렇게 봤다고 구축한 낙랑 위만이 어찌 제대로 된 그림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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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설하고 본론으로 들어가 저 발표진을 일일이 저 소식을 게재 탑재하면서 그 면면을 사진으로 큼지막하게 박았거니와 봐라!
한국은 한 놈도 초청도 못 받았는지 한 놈도 없다.
대신 일본을 보면 대략 훑어도 4~5명이 포함되어 당당히 발표도 하고 했다.
물론 저야 의학에 국한해서 그렇다 하겠지만, 학문 보폭 넓혀봐야 사정 하나 나을 것 없다.
그리 중국 알겠다고 싸돌아다니는 역사고고학도 천지지만 어디 한 놈 저런 자리에 제대로 초대 받아 제대로 발표할 놈 하나 없다.
이것이 냉혹한 우리네 학문 수준이다.
볼수록 분통이 터지고 한심하기 짝이 없어 다시 한 줄 긁적거려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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