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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 기자? 기뤠기?

<3.1절 80주년의 사건> (4) 다급한 전화, 하지만 이미 물은 엎어지고

정확히 언제인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하나 확실한 것은 관련 인터뷰가 나간 1999년 2월 24일이 지난 어느 시점이었다. 전화가 왔다. 현승종 이사장이었다. 여든하나 뇐네가 손수 전화를 했다는 건 두 가지 중 하나다. 


첫째, 기사 내줘서 고맙다

둘째, 기사가 뭔가 문제가 있다. 


유감스럽게도 두 번째였다. 유선상으로 전해진 그의 말을 정확히 기억할 수는 없다. 20년 전 일이니깐 말이다. 다만 그 요지는 내가 기억할 수 있으니, 다음과 같다. 


건국대 일감호



"그 기사 때문에 내가 곤란해졌다. 일본군 소위로 근무했다는 대목이 문제가 됐다. 나를 쫓아내려는 사람들이 그걸 꼬뚜리로 삼아서 들고 일어났다. 내가 친일을 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는 나로서는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없었다. 대체 이게 무슨 낭배란 말인가? 대체 내 인터뷰 기사 어디가 친일로 연결될 수 있다는 말인가? 현 총리가 일제시대에 무엇을 했건 말건, 그것과 관계없이, 대체 무엇이 그의 친일을 말해준다는 말인가 수없이 물었다. 그러면서 다시금 그의 인터뷰 기사를 봤다. 문제가 없었다. 


저런 말 외에도 현 총리는 몇 마디를 더 했다. 인터뷰 기사를 보면 그가 일제말 학도병으로 징병되어 일본군 소위로 근무했다는 대목이 있거니와, 그와 관련해서 현 총리가 말끝을 흐리면서 "편의상 알아 듣기 쉽게 말해서 소위라고 했던 것인데, 그게 정확히는 소위는 아니고 무엇이었다"고 말이다. 


건국대 캠퍼스



이 무엇에 대한 정확한 언급을 내가 기억을 망실해서 안타깝기 짝이 없다. 간단히 말하면 정식 소위가 아닌 무슨 가라 소위였다. 공무원 직제로 본다면, 시보 같은 거 말이다. 아마 전시기 비상사태였던 때라, 뭔가 완장 하나를 찼던 모양인데, 그 완장을 현 총리가 찼던 듯했다. 적어도 그의 말을 빌린다면 그랬다. 


하지만, 이미 엎어진 물이었다. 그것이 이미 나간 내 기사를 뒤집을 만한 이유는 되지 못했다. 시보건 뭐건 그가 일본군에서 소위 자리에 있었던 것만은 분명했다. 설혹 지금 와서 그 대목을 그가 말한 대로 고친다 해서, 달라질 것도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나 자신이 무력했다기 보다는, 내가 의도한 것과는 전연 다른 방향으로, 아니 더욱 정확히는 내가 전연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사태는 전개되고 있었다. 


그를 반대하던 건국대 내부 세력이, 그를 축출할 빌미를 엿보던 그들에게 그 인터뷰는 그 총구를 대신 당겨준 셈이었다. 건국대에서 현승종 이사장 퇴진 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