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100주년이라 해서 난리를 피우는 3.1운동과 상해임시정부 수립이 1999년에는 80주년인 해였다. 그 전 해 12월 1일자로 문화부로 배치되어 문화재와 학술을 담당하게 된 나한테 3.1절 80주년 특집을 하나 기획해 보라는 지시가 부장한테서 떨어졌다.
우리도 특집은 하나 했네 하는 이른바 생색내기는 해야겠고 해서, 이런 압박에 시달리는 기자들이 흔히 생각하는 돌파구가 관련 인사들 인터뷰라, 나 역시 3.1절 관련 담당 주축기자로서, 이런 달콤한 유혹에 빠졌으니....
미국 군정사령관 존 하지 중장이 서울시 공관에서 열린 음악회에 참석, 고려교향악단의 지휘자 임원식씨(오른쪽)에게 악기를 기증하고 있다. 1948.4.25
이에서 관건은 과연 어떤 사람들을 인터뷰하느가 문제였다. 그리하여 하이바(머리를 지칭하는 언론계 속어다) 열심히 굴려서 생각해 냈다는 것이 실로 단순해서, 1919년 3.1절이 발발한 해에 태어난 사람들을 수소문해서, 그네들에게 과연 3.1절은 무엇이냐를 캐내어 보자는 심산이었다.
본래 이런 특집이란 것이 그렇다. 떠밀려서 하는 일이기는 하지만, 짜 놓고 보니 그런대로 괜찮아 보이는 그런 거 있지 아니한가? 3.1절 80주년 특집 인터뷰가 그랬다. 뭐 짜놓고 보니 그런 대로 참 있어 보이기는 했다.
이런 특집안을 툭 던졌더니, 아니나 다를까 사회부 있는 나를 굳이 문화부로 영입하겠다 해서 데리고 온 박찬교 부장도 좋구나 하면서 맞장꾸를 쳤다.
시인 구상
이제 문제는 1919년생을 어찌 섭외하느냐로 넘어갔다. 이에서 우리가 주목한 것은 문화계 인물들이었다. 이른바 지식인이라 그들에게서 3.1절 혹은 그것이 표상하는 식민지시대와 관련한 그럴 듯한 증언들이 나올 법도 했다. 그리하여 인명록 등을 참조해서 우리가 골라낸 1919년생이 세 분이었다.
시인 구상 선생이 있고, 지휘자 임원식(林元植) 선생이 있었는가 하면, 현승종씨가 있었다. 구상 선생이야 문학 담당이 커버하면 되었고, 임원식 선생이야 클래식 담당 기자 몫이었거니와, 현승종 선생은 당연히 학계 인물이라 해서 내가 맡았다. 하긴 뭐 내가 기획해 놓고 내가 그 몫을 팽개칠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 어차피 나는 한 꼭지는 맡아야 했다.
이렇게 해서 이들 세 분 원로 인터뷰가 3.1절을 일주일가량 앞둔 2월 24일 일괄로 연합뉴스를 통해 송고됐으니, 이 특집에다가 우리가 붙인 편집자 주는 다음과 같았다.
현승종 이사장
※편집자 주 = 민족의 자주독립을 선언했던 3.1 독립운동이 올해로 80주년을헤아리게 됐다.
해마다 3.1절이 되면 연례적인 기념행사를 갖고 그 날의 뜻을 기려왔지만 민주. 민중. 자주. 통일의 3.1정신을 이 땅에 실현시키려는 노력은 날이 갈수록 퇴색하고 있다.
연합뉴스는 기미년 1919년에 태어나 일제치하를 거쳐 8.15 해방, 한국전쟁, 4.19 혁명 등 격변의 현대사와 함께 한 ① 구상 ② 현승종 ③ 임원식씨 등 문화계 원로 3명의 인터뷰를 통해 3.1운동 정신의 오늘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이 편집자주는 내가 썼다고 기억한다.
한데 이 인터뷰가 평지풍파를 일으키게 된다. 멀쩡한 사람 하나를 잡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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