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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THESIS

봉인한 우물과 청동 검이 3,200년 된 사르디니아 누라게 문명 비밀을 밝히다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6. 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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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데냐 남중부에 위치한 누라게 바루 고고학 유적의 항공 사진. 튀빙겐 대학교

 
사르데냐의 3,200년 된 누라게nuraghe 유적에서 발견된 봉인된 우물sealed well, 의례용 도기, 그리고 봉헌용 청동 검votive bronze sword을 통해 청동기 시대 탑이 어떻게 철기 시대 제례 장소로 재사용되었는지 엿보게 한다. 

수 세기 동안 지중해 사르데냐 석탑들stone towers은 사라진 청동기 시대를 말없이 상기시키는 표식처럼 섬 위에 우뚝 서 있었다.

누라게 바루(Nuraghe Barru)에 있는 이 고대 유적은 이제 더욱 복잡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단순히 시대가 변하면서 버려진 것이 아니라, 변모를 거듭했다는 것이다.

튀빙겐 대학교 실비아 아미코네Silvia Amicone 박사가 이끄는 새로운 학제 간 연구에 따르면, 사르데냐 남중부에 위치한 누라게 바루의 청동기 시대 탑 유적은 초기 철기 시대까지 사회적, 정신적 역할을 계속 수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적 내부에서 고고학자들은 깨진 도기, 동물과 인간 유해, 그리고 근처에서 발견된 94cm 길이 청동 검, 면도날처럼 생긴 청동 유물, 구리 덩어리 등 봉헌물로 가득 찬, 의도적으로 봉인된 저수조cistern-well를 발견했다.

이러한 발견은 3,200년 전에 건설된 탑이 사르데냐 사회가 종교적, 정치적으로 큰 변화를 겪던 시기에 의례 활동 장소로 재사용되었음을 시사한다.

사르데냐 "탑의 섬island of towers"에서 발견된 유적
사르데냐는 청동기 시대에 건설된 거대한 석탑인 누라게nuraghi로 유명하다.

섬 전역에 약 7,000개 누라게가 남아 있어 사르데냐는 "탑의 섬"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일반적으로 큰 돌과 돌출된 내부 구조물로 지은 이 건축물들은 기원전 1700년에서 1100년 사이에 세워졌다.

어떤 것은 단순한 단일 탑이었지만, 누라게 바루처럼 여러 개 탑, 성벽, 그리고 인접한 거주 지역을 갖춘 더욱 복잡한 유적으로 발전한 경우도 있다.

누라게의 용도는 여전히 논쟁거리다.

고고학자들은 누라게를 방어 시설, 엘리트 거주지, 영토 경계 표시, 공동체 중심지 또는 의례 장소로 해석한다.

튀빙겐 대학교 실비아 아미코네 박사는 보도 자료에서 이러한 기념물들이 "수 세기 동안 섬의 경관을 지배했다"고 언급했다.

바루 발굴팀의 핵심 질문은 후기 청동기 시대와 초기 철기 시대에 새로운 신성한 건물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이러한 고대 탑들이 그 중요성을 잃었는지 여부였다.

바루 발굴 결과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시사한다.

누라기 바루는 과마조레Guamaggiore와 과실라Guasila 마을 근처 역사적인 트렉센타Trexenta  지역에 위치한다.

이 유적은 여러 개 탑으로 이루어진 누라기와 그 옆에 있는 마을로 구성되며, 마을 전체 규모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초기 발굴 조사에서는 탑 단지가 중기 또는 후기 청동기 시대에 여러 차례 증축을 통해 건설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 발굴 조사에서는 기념물 서쪽 벽 내부에서 더욱 특이한 것이 발견되었다.

바로 위층으로 이어지는 계단과 연결된 저수조였다.

저수조가 있는 바루 누라게 유적. 여러 개 탑으로 이루어진 누라게는 주로 원형 움막으로 둘러싸여 있다. 사진 제공: 튀빙겐 대학교

 
깨진 제물로 가득 찬 봉인된 우물

저수조는 이번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가 되었다.

유적 발굴을 이끈 현지 소프린텐덴차Soprintendenza[문화재 관리 담당 조직]의 키아라 필로Chiara Pilo 박사에 따르면, 우물 바닥에는 의도적으로 깨진 도기가 모여 있었다.

이에는 주전자, 소형 암포라, 그리고 희귀한 네 손잡이 의례용 그릇이 포함된다.

동물과 인간 유해도 안에 놓여 있었다. 그 후, 우물은 석회석으로 조심스럽게 봉인되었다.

이러한 봉인은 중요하다.

발견된 유물들은 버려진 건물에 버려진 평범한 쓰레기처럼 보이지 않는다.

유물 배치, 파손 정도, 그리고 봉인은 공식적인 의례 행위를 시사한다.

필로 박사는 이러한 발견이 "무작위로 버려진 물건이라기보다는 의례 행위의 한 에피소드를 가리킨다"고 설명한다.

다시 말해, 이 오래된 탑에 들어간 사람들은 단순히 청소하거나, 쓰레기를 버리거나, 수리하기 위해 들어간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건물의 의미를 바꾸고 있었다.

도기 유물 자체도 이야기를 들려준다.

Open Archaeology에 발표된 논문은 이 저수조에서 최소 23점 도기와 장식된 네 손잡이 의례용 도기를 확인했다.

아스코이드형 주전자와 그릇을 포함한 일부 형태는 누라게 문화권에서 발견되며, 액체를 담거나 따르는 용도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

저수조에서 이러한 토기들은 물, 제물, 연회 또는 정화와 관련된 의미를 지녔을 가능성이 있다.

특이한 소형 암포라는 의례적 해석을 더욱 뒷받침한다.

소형 토기는 실용적인 가치가 없기 때문에 신성하거나 상징적인 맥락에서 자주 등장한다.

그것들은 표현하거나, 봉헌하거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만들었다. [이 미니어처 도기들은 말할 것도 없이 명기明器다. 명기의 의미를 서구 쪽에서는 모르므로 저리 헤맨다.] 

전투용이 아닌 청동 검

누라게 바루에서 가장 눈에 띄는 유물은 계단 근처에서 발견된 청동 검이다.

길이는 94cm에 달하지만, 연구 결과에 따르면 실용적인 무기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가늘고 긴 형태와 금속 구성은 누라게 유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봉헌용 검 특징과 일치하는데, 이는 전투용이 아닌 상징적 또는 의례적 용도로 제작된 것임을 시사한다.

연구팀은 또한 면도날과 유사한 청동 유물 세 점과 구리 덩어리 하나를 발견했다.

휴대용 X선 형광 분석 결과, 검과 면도날처럼 생긴 유물들은 주석 함량이 낮고 구리 함량이 높은 합금으로 만든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구성은 이 유물들이 실용적인 용도가 아닌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 물건이었음을 뒷받침한다.

특히 면도날처럼 생긴 유물들은 초기 철기 시대 이탈리아 본토에서도 유사한 형태가 발견되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그러나 바루에서 발견된 유물들은 단순히 수입품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형태는 더 넓은 문화적 교류를 반영할 수 있지만, 구성 성분은 현지 또는 인근 지역에서 생산되었음을 시사한다.

이는 누라게 바루가 사르디니아, 이탈리아 본토 및 기타 지역 간에 물건, 양식, 사상이 교류한 더 넓은 지중해 세계 안에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금속 유물들이 계단 옆에 놓인 후, 위층으로 올라가는 통로가 막혔다.
이는 또 다른 의도적인 건축적 행위였다.

이 건물은 단순히 의식을 위한 용도로만 사용된 것이 아니었다. 의식에 의해 물리적으로 변형되기도 했다.

누라게 바루 유적 출토 도기 및 금속 유물. 사진 제공: 튀빙겐 대학교

 
섬의 먼 지역에서 온 도자기

튀빙겐 대학교 연구팀은 고고학, 지질학, 재료 과학을 결합해 유물 출처를 밝히고자 했다.

도기의 광물을 식별하는 박편 암석학 분석 결과, 저수조에서 발견된 대부분의 토기는 현지에서 제작된 것이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에서 확인된 8개 도기 재질 그룹 중 7개는 현지 외 지역에서 온 것으로 판단되었다.

일부 토기는 약 10km 떨어진 인근 지역에서 왔을 가능성이 있으며, 다른 토기들은 바루에서 40km 이상 떨어진 지역에서 왔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의례적 매장지가 사르데냐 여러 지역에서 온 물건들을 한데 모았음을 시사한다.

아미코네Amicone에게 이것은 가장 중요한 발견 중 하나다.

바루에서 사용된 재료들은 섬 전체에 걸친 광범위한 교류 패턴을 반영한다.

사람, 상품, 그리고 아이디어들이 사르디니아를 통해 이동했고, 누라게 바루는 그 네트워크 중심지 중 하나였을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해석은 유적에 대한 이미지를 바꿔놓는다.

바루는 고립된 시골 유적이 아니었다. 이동, 교류, 그리고 공유된 의례 행위를 통해 다른 공동체들과 연결되어 있었다.

변화하는 종교 세계 속의 오래된 탑들

바루 유적은 누라게 사르데냐의 광범위한 변혁 맥락에 속한다.

청동기 시대 말기와 철기 시대 초기에 걸쳐 섬 전역에 새로운 성스러운 우물, 신전, 원형 사당, 그리고 사원과 같은 건축물들이 나타났다.

이러한 새로운 숭배 장소들은 의례, 권력, 그리고 교류의 중요한 중심지가 되었다.

하지만 누라게 바루는 오래된 탑들이 반드시 그 권위를 잃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일부는 재사용되고, 재해석되고, 새로운 영적 관습에 통합되었다.

사르데냐 문화재관리청(Soprintendenza)에서 진행 중인 발굴의 과학 책임자인 잔프랑카 살리스Gianfranca Salis 박사는 바루를 변화의 시기에 의례, 정체성, 그리고 사회적 권력이 협상된 활발한 철기 시대 중심지의 잘 기록된 사례라고 설명한다.

이 표현은 매우 중요하다.

발견된 유물들은 단순히 종교적 유물이 아니다. 그것들은 정체성과 권위에 대해 이야기한다.

많은 고대 사회에서 의례는 정치나 사회 계층과 분리될 수 없었다.

여러 지역에서 물건을 모아 조상의 탑 안에 안치하고, 상징적인 검을 봉인한 공동체는 기억, 정당성, 소속감에 대한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오래된 탑은 과거의 무게를 짊어지고 있었기에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

C: 석회암 석판으로 봉인된 저수조(Pilo and Usai 2020 참조); D: 저수조 바닥에서 발굴된 도기류(손잡이가 네 개인 의례용 그릇 포함)(Pilo and Usai 2020 참조); E: 누라게 서쪽 벽 계단 부근에서 발굴된 청동 검(Pilo and Usai 2020 참조). 출처: Amicone, Silvia 외, 2026

 
누라게 신앙에 대한 드문 통찰

본 연구는 모든 누라게가 사원이 되었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연구진은 이 점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보인다.

바루Barru[지명]는 특정한 사례이며, 이 증거가 섬에 있는 모든 탑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는 청동기 시대 기념물 중 일부가 최초 건설 이후에도 오랫동안 의미를 유지했다는 점을 뒷받침하는 증거에 더해진다.

봉헌용 검은 특히 희귀하다. 연구에 따르면, 누라게 내부에서 온전한 상태로 발견된 봉헌용 검은 이 검이 두 번째에 불과하며, 이는 향후 누라게 의례 매장 연구에 중요한 비교 대상이 될 것이다.

이 의례의 의미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물, 가뭄, 사냥, 전쟁, 엘리트의 과시, 또는 공동체의 갱신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

더 분명한 것은 일련의 행위 과정이다.

그릇을 깨뜨려 우물에 넣고, 유해를 매장한 후, 우물을 봉인하고, 금속 제물을 계단 근처에 놓고, 접근을 차단했다.

이러한 흔적들은 우연히 남겨진 것이 아닙니다. 의도적인 선택이었다. [뭐 간단하구만? 우물이 죽어서 우물을 장사지낸 일 말고 무슨 개뼉다귀란 말인가?] 

튀빙겐 대학교 총장인 카를라 폴만 교수는 이번 연구가 학제 간 연구를 통해 과거 세계에 대한 더욱 완전한 그림을 그려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누라게 바루에서는 그 그림이 놀라울 정도로 생생하게 드러난다.

청동기 시대 유적이 단순히 폐허로 사라진 것이 아니다.

이곳은 철기 시대 공동체가 조상, 신성한 공간, 그리고 권력과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무대가 되었다.

3천 년이 넘는 세월이 흐른 지금도, 봉인된 우물과 청동 검은 그 변혁의 순간을 고스란히 간직한다.

출처 튀빙겐 대학교University of Tübingen

Amicone, Silvia, Tiezzi, Valeria, Broisch-Höhner, Manuela, Freund, Kyle P., Heinze, Lars, Morandi, Lionello F., Salis, Gianfranca and Pilo, Chiara. “Ritual and Connectivity in Nuragic Sardinia: An Interdisciplinary Study of Ceramics and Metalwork from Nuraghe Barru” Open Archaeology, vol. 12, no. 1, 2026, pp. 20250078. https://doi.org/10.1515/opar-2025-00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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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하다! 우물이 죽어 우물을 사람 장례 치루듯 똑같은 방식으로 장례 치러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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