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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차 썼지만,
진흥왕의 황초령, 마운령비는 신라가 생각하는 벼농사 문명의 북쪽 끝에 해당한다.
저 지역을 넘어서면 한반도 남부의 사람들이 볼 때 전혀 다른 별개의 세상이 펼쳐져 있었을 것이다.
신라의 이러한 경험은 삼국통일 후 북진선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임에 틀림없다.
삼국통일의 단계에서 만주를 묶어 내려면 잡곡문명과 도작문명 둘 다 포괄할 수 있어야 한다.
남쪽에서 올라간 문명은 이에 대한 경험이 없었다.
이후 한국사가 도작의 북진과 영토의 확장이 항상 같이 따라 갔던 것은
신라의 북진선이 곧 그 당시 도작문명으로서는 올라갈 수 있는 가장 북쪽선이었다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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