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y Giles Gasper / The Conversation
수도원을 세우기에 가장 좋은 장소는 물과 나무가 풍부한 곳이었다. 많은 수도원 연대기 작가들이 이를 언급한다.
1075년 영국 슈루즈베리Shrewsbury 근처에서 태어나 다섯 살 때 노르만 수도원 생 에브룰트St Évroult에 들어간 오르데릭 비탈리스Orderic Vitalis는 이 두 가지 필수 요소를 명확히 지적했다.
물은 세탁, 위생, 식수, 잉크 제조, 석회 모르타르 제작에 필요했고, 나무는 건축과 난방에 필요했다.
중세 시대에는 다른 여러 수도회가 존재했지만, 베네딕토회 수도 생활이 가장 인기 있었다.
성 베네딕토St Benedict에 귀속되는 수도 규칙은 73개 장으로 구성되어 수도사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지침을 제공한다.
수도사들은 내세, 즉 사후 세계에 집중하고 순종과 겸손을 실천해야 했다. [이 점은 불교의 청규와 아주 비슷하다.]
수도사들은 개인 재산을 소유할 수 없었다. 비록 수도원이라는 기관 자체는 매우 부유했을지라도 말이다.
물질적인 안락함은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중요한 관심사가 아니었다.
실제로, 당시 종교적 표현에서는 물질적 불편함과 영적 가치 사이의 대조적인 관계가 자주 나타난다.
많은 경우, 육체적인 불편함이 클수록 영적인 가치가 더 크다고 여겼다.
11세기 말에 독자적인 수도 집단으로 등장하며 성 베네딕토 규칙Rule of St Benedict을 따른 시토회Cistercians는 삶의 모든 영역에서 금욕을 매우 강조했다.
수도 공동체monastic communities의 규정은 추위에 대한 그들의 태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배경을 제공한다.
베네딕토 규칙에서 추위에 대한 배려는 제한적이었다.
추운 지역 수도사들은 더 많은 옷이 필요하다는 점은 인정했지만, 일반적으로 겨울과 여름 복장 유일한 차이점은 추운 계절에는 두껍고 양모로 된 두건woolly cowl (어깨까지 덮는 후드hood)을 쓰고, 그 외 계절에는 얇은 두건을 쓰는 것이었다.
베네딕토는 서기 6세기 이탈리아에서 글을 썼다. 중세 후기 북부 지역 상황은 여러 면에서 초기 중세 지중해 지역과 상당히 달랐다.
특히 수도원이 얼마나 추워질 수 있는지를 보면 더욱 그렇다.
오르데리코스Orderic는 그의 저서 『교회사』(Historia ecclesiastica, 총 13권 중) 4권 말미에 겨울의 영향에 대해 묘사했다.
현재 프랑스에 해당하는 노르망디Normandy와 메인Maine 국경 지역에서의 분쟁과 충돌에 대해 간략히 언급한 후, 그는 다음과 같이 썼다.
"인간은 수많은 불행에 시달리는데, 그 모든 것을 다 적는다면 엄청난 분량의 책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겨울 추위에 몸이 얼어붙었으니 다른 일에 집중하겠습니다. 고된 노동에 지쳐 이 책을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따뜻한 봄이 오면 다음 책에서 간략하게 언급했거나 아예 생략했던 모든 것을 자세히 이야기하겠습니다."
하지만 수도원 한 방은 추운 날씨에도 따뜻하게 유지되었다.
난방실, 즉 온열실에는 불이 설치되어 있었고, 경우에 따라서는 다른 편의 시설도 갖춰져 있었다.
수도원 경내에 벽난로가 있는 건물은 극히 드물었다. 교회 건물과 기숙사는 난방 시설이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난방실은 이러한 상황에서 매우 중요하고 특별한 공간이었다.
난방실 중에는 비교적 넓은 곳도 있었지만, 한 번에 많은 사람을 수용하기에는 공간이 부족했다.
열 명 남짓한 수도사들이 벽난로 주위에 모여 장작 타는 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수도원에서는 대화가 금지되었다), 추운 환경에서 따뜻함을 찾는 모습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모습은 실제 수도사들 삶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난방실은 공동체 생활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음에도 기록에는 크게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남은 건물과 문헌 자료를 통해 수도사들의 삶과 난방실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엿볼 수 있다.
중세 영국에서는 요크셔Yorkshire에 있는 시토회 수도원인 모Meaux 수도원이 그 예다.
1141년에 설립된 이 수도원은 건물 자체는 남아 있지 않지만, 방대한 연대기가 전한다.
1182년부터 토마스 수도원장Abbot Thomas 통치 하에 지은 새로운 건물들에 대한 기록에는, 돌로 지은 훌륭한 수도사 식당refectory (dining room)뿐만 아니라 난방실warming house과 작은 부엌에 대한 언급도 포함된다.
이러한 건물들이 수도원장 업적 중 하나로 연대기에 기록되어 후세 수도사들에게 전해진다는 사실은 당시 이러한 건물들이 얼마나 가치 있게 여겨졌는지를 잘 보여준다.
또한 흥미로운 점은 식당은 수도원에 기부한 사람들 지원으로 빠르게 지었으나, 부엌과 난방실은 가계가 허락하는 대로 점진적으로 지었다는 사실이다.

불의 가치
모 수도원 난방실은 역사적 기록으로만 존재하지만, 다른 난방실들은 잘 보존된 사례가 많다.
노스 요크셔north Yorkshire에 있는 리볼 수도원Rievaulx Abbey 난방실이 좋은 예다.
리에볼 수도원의 난방 시설은 식당 옆에 있으며, 12세기부터 16세기에 걸쳐 상당히 많이 개조되었다.
최종으로 2층 건물이 된 이 난방 시설에는 겨울철 수도사들을 위한 빨래 시설도 포함되었다.
이제 더럼Durham으로 가보자. 16세기(그리고 그 이후)에 등장한 훌륭한 문헌 《더럼의 의식(The Rites of Durham)》을 살펴보겠다. 이 문헌은 종교개혁 이전 수도원 관습에 대한 마지막 기록이다.
이 문헌에 따르면, 회랑을 나서면 오른쪽에 난방실, 즉 공동 휴게실common house이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었다.
"수도사들이 와서 몸을 녹일 수 있도록 겨울 내내 불을 피웠는데, 그 외에는 어떤 불도 피울 수 없었다. 다만 원장과 관리들은 각자 여러 개 불을 피울 수 있었다."
중세 건물은 난방이 어려웠지만, 따뜻한 방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당시 따뜻함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지를 보여준다.
더럼 대성당 수도원의 공동 휴게실에서는 수도사들에게 크리스마스 무렵에 특별한 간식들이 제공되었다고 한다. 무화과, 건포도, 케이크, 에일ale 등이 제공되었고, 수도사들은 적당량을 섭취했다.
***
헐벗고 주린 자들이여 나한테 오라?
헐벗건 주리건 나발이건 내가 추운 데 무슨 소용? 나부터 따듯하고 봐야지 않겠는가?
저 서양 기독교 수도원은 대승불교가 공격한 소승불교적 발현이라는 점이 나로선 몹시도 의혹이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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