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의 2천 년 동안 이탈리아 중부 구릉에서 채취한 옅은 색 흙은 의학, 공예, 의례, 과학 세계를 조용히 연결한다.
오늘날 새로운 고고학 및 지구화학 연구에 따르면, 여전히 지역 시장에서 판매되는 이 소박한 점토가 고대 로마의 大플리니우스Pliny the Elder가 칭송한 바로 그 물질일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기록할 가치가 있는 점토
서기 1세기, 로마 박물학자 大플리니우스는 고대 세계의 일상생활을 형성한 물질들을 꼼꼼하게 목록화했다.
개중에는 움브리아Umbria 지방에서 생산되는 옅은 색 점토인 크레타 움브리카creta umbrica가 있었는데, 이는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라 실용성 때문에 귀하게 여겨졌다.
양모 의류를 세척하고 복원하는 전문가인 풀러들이 사용한 이 점토는 기름기를 흡수하고 광택을 잃은 직물을 되살리는 놀라운 능력을 지녔다.
현재로 시점을 옮겨보면, 비슷한 물질이 여전히 같은 지역에서 다른 이름으로 유통되고 있다.
바로 '테라 디 노체라Terra di Nocera'다.
노체라 움브라Nocera Umbra에서 채취한 이 백토는 오늘날 화장품 및 치료 목적으로 판매되며 비누, 피부 관리 제품, 그리고 전통 요법에 사용된다. 이 현대 제품이 플리니우스가 언급한 '크레타 움브리카creta umbrica' 후손일까?
다학제 연구팀은 그 답이 '그렇다'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과학과 고대 문헌의 만남
학술지 '고고학 및 인류학 과학(Archaeological and Anthropological Sciences)'에 발표된 이번 연구는 고고학, 광물학, 지구화학을 결합하여 테라 디 노체라와 크레타 움브리카가 수세기 동안 이름과 용도가 바뀌면서 분리된 동일한 물질인지 여부를 조사했다.
연구진은 테라 디 노체라의 지질학적 원천인 움브리아 아펜니노Umbrian Apennines 산맥의 특징적인 이회암 지층marly limestone formation인 스카글리아 치네레아 지층Scaglia Cinerea Formation에서 직접 채취한 샘플을 분석했다.
X선 회절 및 화학 분석을 사용하여 연구진은 방해석calcite, 일라이트illite 및 스멕타이트smectites가 주를 이루는 광물 조성을 확인했는데, 이 점토 광물들은 흡수 및 세척 특성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러한 발견은 플리니우스의 묘사와 놀라울 정도로 잘 일치한다.
로마 직물 가공에서 흡수성은 매우 중요했다.
양모 의류는 유황 훈증 후 기름기를 제거하고 광택을 되살리기 위해 점토로 처리했다.
테라 디 노체라의 광물 구성은 바로 이러한 작업에 매우 적합했다.

고대 무덤에서 찾은 단서
조사는 지질학에만 그치지 않았다. 고고학적 증거는 더욱 심오한 역사적 차원을 제공했다.
기원전 9세기부터 3세기까지 것으로 추정되는 움브리아의 콜피오리토와 세라발레 디 키엔티Colfiorito and Serravalle di Chienti 공동묘지 발굴에서, 엘리트 매장지에 의도적으로 놓인 굽지 않은 점토 "덩어리"가 발견되었다.
때로는 수 킬로그램에 달하는 이 가공되지 않은 점토 덩어리는 고인의 발이나 머리맡에 놓이거나, 때로는 의례용 그릇 안에 놓이기도 했다.
이러한 점토 덩어리 몇 개에 대한 화학 분석 결과, 테라 디 노체라(Terra di Nocera)와 스카글리아 치네레아 지층(Scaglia Cinerea Formation)과 구성 성분이 매우 유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기원이 같다는 것을 시사하며, 로마 시대 이전부터 이 점토가 실용적인 의미뿐 아니라 상징적인 의미도 지니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연구자들은 이 점토 덩어리가 직물 생산 및 가정생활과 관련된 실용적인 역할과 치유, 정화, 또는 죽음 이후의 의례적 보호와 관련된 상징적인 역할, 이렇게 두 가지 역할을 했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장례 의식에서 풀러Fuller 공방까지
로마 제국 시대에 이르러 움브리아 점토의 역할은 의례용 물건에서 산업 재료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플리니우스는 직물 생산의 특정 단계, 즉 세척, 훈증, 마감 과정에서 다양한 점토가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설명하며, 재료의 특성에 대한 정교한 이해를 보여준다.
특히 크레타 움브리아 점토는 옷을 희게 하는 용도보다는 복원하는 데 더 유용하게 사용되었는데, 이는 더 부드럽지만 매우 효과적인 작용을 했음을 시사한다.
무게가 아닌 부피로 판매되었다는 사실은 물에 젖었을 때 크게 팽창하지 않았음을 시사하며, 이는 테라 디 노체라에서 확인된 광물의 특성과 일치하는 세부 사항이다.
현대 세계에서 재탄생한 테라 디 노체라
16세기경, 테라 디 노체라에 대한 언급이 의학 서적, 시, 그리고 지역 전통에서 다시 등장하기 시작했다.
의사들은 이 물질이 렘노스Lemnos 섬이나 사모스Samos 섬에서 나는 유명한 약용 점토와 유사한지 여부를 놓고 논쟁을 벌였고, 어떤 이들은 분류 자체를 거부하고 그 효능에 주목했다.
20세기에는 테라 디 노체라가 비누 대용품으로 판매되기도 했다.
고체 형태로 만들어 상업적으로 유통되었지만, 현대 분석에 따르면 그 세정력은 화학적 작용보다는 기계적 작용, 즉 천연 탈지제에 가깝고 진정한 비누는 아니다.
현대의 대담한 마케팅 문구에도 불구하고, 이 연구는 테라 디 노체라에 기인한다고 여겨지는 많은 건강상 이점을 뒷받침하는 임상적 증거가 현재로서는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
테라 디 노체라의 진정한 가치는 기적적인 치료 효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 동안 잘 기록된 그 기능적 역사에 있다.

영원히 지속되는 재료
테라 디 노체라가 플리니우스의 크레타 움브리아creta umbrica와 동일하다는 것을 확실하게 증명할 수는 없지만, 역사 문헌, 고고학적 발견, 그리고 현대 과학 데이터의 종합적인 분석은 이러한 연관성을 매우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 연구가 천연 물질이 수천 년 세월을 거치며 새로운 문화적 맥락에 적응하면서도 본질적인 특성을 유지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고대 장례 의식에서부터 로마 시대 작업장, 그리고 현대의 웰빙 제품에 이르기까지, 움브리아 점토는 미신이 아닌 연속성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혁신에 집착하는 시대에, 테라 디 노체라는 인류의 가장 오래 지속되는 기술 중 일부가 오래전, 우리 발밑 땅속에서 조용히 완성되었음을 일깨워준다.
Gliozzo, E., Fantozzi, P.L., Frapiccini, N. et al. Pliny’s Creta umbrica reconsidered: connections with Terra di Nocera and clay loaves from Umbrian necropoleis. Archaeol Anthropol Sci 18, 10 (2026). https://doi.org/10.1007/s12520-025-02379-0
미백 화장품? 이런 종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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