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이하는 국립대구과학관 최병도 박사 글이라, 전재한다. 개형충에 무지막지하게 집착하는 과학도다.

<개형충의 물건>에 대해 예전에 써본 글인데, 재밌게 봐주세요.
양성생식을 하는 개형충은 종마다 수컷 생식기관 형태가 달라서 부속지와 더불어 분류에 중요하게 활용한다.
이 기관을 반음경(hemipenis)이라 한다.
보통 반음경이라는 용어는 파충류 같은 척추동물에게서 관찰되는 두 개 음경 구조를 말한다.
개형충의 반음경도 두 갈래라 정자가 양쪽 음경에서 사출되지만, 몇 가지 구조가 복잡하게 결합한 기관이라는 점에서 다소 차이가 있다.
어떤 개형충의 반음경에는 근육이 없어 정자를 내보내기 위한 젠커기관(Zenker’s organ)이라는 별도 근육질 펌프가 발달한다.
젠커기관은 길쭉한 버섯이나 꽃받침이 여러 개 있는 식물 줄기 같이 생겨서 오히려 더 생식기 같이 생겼지만, 실제 암컷에게 닿는 음경은 아니다.
이 기관이 없는 다른 분류군들은 반음경에 붙은 근육을 움직여 암컷에게 정자를 전달한다.
수컷의 반음경과 젠커기관과 같은 생식기관은 몸 전체(연질부)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매우 크다.
유성생식을 하는 개형충 종한테 번식 전략이 매우 중요함을 보여준다.
개형충 수컷의 큰 ‘물건’은 매우 오래전부터 존재했다는 사실을 과학자들은 확인했다.
2003년 영국 레스터 대학교 데이비드 시베터David Siveter는 지금까지 화석으로 발견된 물건 중 가장 오래된 것을 찾았다고 발표했다.
그것도 모든 동물을 통틀어서 말이다!
시베터 교수와 그의 연구팀은 영국 헤리퍼드셔 고생대 실루리아기 지층(약 4억 2,500만 년 전)에서 연질부가 썩지 않고 보존된 개형충 화석을 찾았다.
이 동물은 쏟아져 내리는 화산재에 빠르게 묻혀 몸이 썩지 않고 광물화하고선 긴 시간 동안 보존될 수 있었다.
하지만 화석의 미세한 구조들을 암석에서 추출하기란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대신 화석이 포함된 암석을 책을 한장 한장 넘기듯 조금씩 얇게 자르고(하지만 책 1장보다 더 얇은 조각으로), 그 단면을 하나씩 사진으로 찍었다.
이후 촬영한 디지털 사진들을 조합해 3차원 구조를 재구성하자 여러 개 부속지, 눈, 아가미, 그리고 수컷 생식기관이 모습이 드러났다.
이 개형충은 지금도 살아서 헤엄치는 부유성 묘도코프아과 중 실린드로레베리드과(Cylindroleberididae)에 속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더 놀라운 건 수컷 생식기관 형태가 4억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거의 변한 게 없다는 사실이다.
이 개형충은 다른 종의 수컷과 마찬가지로 생식기관이 몸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매우 크기 때문에 콜림보사톤 에클렉티코스(Colymbosathon eclecticos)라는 학명이 붙었다.
그리스어로 “큰 생식기를 지닌 놀라운 수영 선수”라는 뜻이다.
정말 적절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는 이름이다.
해외에서 개형충으로는 드물게 신문 1면을 장식한 종이기도 하다.
콜림보사톤과 같이 생식기관이 발견되는 경우는 드물긴 하지만 간혹 뉴스를 장식할 정도로 이따금 발견된다.
브라질에서는 1억 1천만 년 전 백악기에 산 담수 개형충 수컷의 생식기관과 더불어 암컷의 정자낭(seminal receptacles)이 발견되기도 했다.
'성선택(sexual selection)'이 개형충 번영을 이끌었을까?
유성생식을 하는 다세포동물들은 생존에 유리한 유전자를 조합하고 나쁜 돌연변이를 제거하기 위해 번식할 때 에너지를 많이 쏟는다(물론 의식적이라기보다 본능적으로 그렇게 한다).
암컷 또는 수컷은 더 화려하거나 건강한 이성을 선호하고, 이성에게 선택받기 위해서 살아가는 데 그다지 필요도 없는 거추장스러운 장식을 몸에 주렁주렁 달기도 한다.
예를 들어 수컷 공작의 화려한 장식깃은 암컷에게 자신의 건강함을 과시하는 신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포식자 눈에도 잘 띄게 한다는 점에서 치명적이기도 하다.
언제 죽어도 일단 유전자만 대대손손 이어간다면 되는 것일까?
이에서 잠깐 개형충 껍질을 다시 들고 와야겠다.
개형충 껍질에서도 암컷과 수컷의 성별이 두드러지는 성적이형성을 종종 본다.
현재도 바다와 담수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시테로이드상과(Superfamily Cytheroidea)는 성적이형성이 두드러지는 개형충 분류군 중 하나인데, 이에 속한 일부 종을 보면 성선택이 꼭 번영을 이끄는 것도 아닌 듯하다.
미국 스미스소니언 국립자연사박물관 진 헌트Gene Hunt는 공교롭게도 “유전자 사냥”이라는 그의 이름에 어울리는 진화 연구를 활발하게 하는 학자다.
헌트 박사는 같은 박물관 마르틴스Maria João Fernandes Martins와 함께 성선택이 개형충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알아보기 위해 멕시코만과 대서양 연안 백악기-신생대 지층에서 발견되는 시테로이드상과 종들의 수컷 껍질을 자세히 비교했다.
앞에서 말했듯이 수컷은 더 긴 껍질을 지니며 생식기관 크기를 직접적으로 반영한다(단, 시테로이드상과 종들에는 젠커 기관이 없다).
그리고 생식기관이 더 커서 수컷 껍질 형태가 두드러지는 종일수록 정자 경쟁에 치열하게 참여했다는 걸 의미한다.
공작 수컷이 깃털에 투자한다면, 개형충 수컷은 생식기관에 모든 걸 투자했다(화석이므로 과거형이다).
연구진에 따르면 자손을 남기기 위한 성적 발달은 오히려 멸종을 부채질하고 말았다.
번식을 위해 생식기관에 투자를 많이 한 종의 멸종률은 투자를 적게 한 종보다 최대 10배나 높았다.
즉, ‘수컷의 막대한 성적 투자(High male sexual investment)'가 오히려 멸종에 중요한 위험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졌을까?
단순히 생식기관이 크다는 점이 개형충을 멸종으로 몰고 간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생물이 오랜 기간 존속하기 위해서는 번식 말고도 여러 요인에 투자해야 한다.
예를 들어 방어 기관이라든지, 염도나 수온 변화에 적응하는 신체 내부 시스템 같은 것 말이다.
다시 말해 대멸종 사건이나 갑작스럽게 바뀌는 염도와 같이 주변 급변하는 환경에서는 번식과 관련된 형질을 조금 희생하더라도 생존에 더 유리한 형질을 남겨두는 일이 더 중요하다.
멸종한 개형충 종은 말 그대로 번식에 다 투자한 셈이다.
헌트 박사와 함께 연구한 록우드 교수가 개형충을 보고 “온통 섹스 생각으로 뇌가 가득 찬 동물이다. 뇌가 큰 것도 아니지만”이라고 언론을 통해 말한 일은 반쯤 농담이지만 이해가 된다.
더 좋은 유전자를 전달하기 위한 성선택이 종을 막다른 길로 이끈다니 아이러니하다.
다만 모든 시테로이드상과의 개형충들이 이런 성선택 경쟁에 무모하게 달려든 건 아니다.
여전히 물 속에 많은 시테로이드상과들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바다에 사는 개형충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시테로이드상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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