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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THESIS

3,500년 전 북미 대륙 대규모 토목 건설 현장 포버티 포인트는 정착지 아냐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5. 1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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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자 등장 근거 없어, 평등한 수렵채집인들 의례장소였을 뿐

 

미국 루이지애나 북동부에 위치한 인상적인 파버티 포인트 토목 공사의 공중 촬영을 보여주는 예술가 작품. 출처: HRoe 2014 / CC BY-SA 4.0

 
새로운 고고학 연구는 약 3,500년 전 미국 루이지애나 주 포버티 포인트Poverty Point에다가 고대 수렵 채집인들hunter-gatherers이 기념비적인 토루monumental earthworks를 건설한 이유에 대한 오랜 가설에 이의를 제기한다.

과학자들은 이 유적이 계층 사회의 영구적인 정착지가 아니라, 우주의 무질서를 치유하기 위한 영적 의식을 위해 수천 명이 모이는 일시적인 모임 장소temporary gathering place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우스이스턴 고고학Southeastern Archaeology 저널에 발표된 이 연구 결과는 북미에서 가장 신비로운 고대 유적 중 하나에 대한 근본적으로 다른 해석을 제시한다.

족장 정치 이론Chiefdom Theory에 대한 반박

Phys.org에 게재된 보도자료에 따르면, 수십 년 동안 고고학자들은 포버티 포인트 건설에는 1,000여 년 후 일리노이 주에다가 카호키아 마운드Cahokia Mounds를 건설한 것과 유사한 복잡하고 계층적인 사회complex, hierarchical society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 프로젝트 자체가 엄청난 노동력을 필요했으므로, 이를 만든 사회는 그런 동원을 할 수 있는 족장이라는 권력 정점이 필요했을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포버티 포인트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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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적인 추정에 따르면 포버티 포인트 기념물 건립에 바퀴도 말도 없이 덤프트럭 14만 대 분량 흙을 옮겨야 했다고 한다.

그러나 세인트루이스 워싱턴 대학교 인류학과 교수인 트리스트럼 "T.R." 키더Tristram "T.R." Kidder와 그의 팀은 설득력 있는 대안적 해석을 제시했다.

현장을 재방문하고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을 실시하며 고고학 기록을 재고한 결과, 그들은 포버티 포인트가 영구적인 마을도 아니고 지배 엘리트를 기리는 기념물도 아니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오히려 이곳은 남동부와 중서부 전역에서 온 평등주의적인 수렵 채집인들egalitarian hunter-gatherers이 수년에 걸쳐 주기적으로 모이는 의례적인 모임 장소 역할을 했다.

고고학 대학원생이자 이 연구 공동 저자인 올리비아 바움가텔Olivia Baumgartel은 "이 사람들은 어떤 강력한 족장 사회의 신민이 아니라 평등주의적인 수렵 채집인들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이론을 뒷받침하는 증거는 중요하다.

고고학자들은 포버티 포인트에서 매장지나 장기 거주지 흔적을 발견한 적이 없다.

수 세기 동안 사람들이 계속해서 거주했다면 당연히 발견되었을 구조물들이다.

키더는 Phys.org 보고서에서 "사람들이 포버티 포인트에서 수 세기 동안 계속해서 살았다는 오래된 패러다임이 무너지고 있으며, 새로운 틀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미국 루이지애나주 파버티 포인트 고고학 유적의 능선 1~6. (제니퍼 R. 트로터/CC BY-SA 4.0)

 
의식 수행을 통한 우주의 회복

파버티 포인트 건설 시기는 그 목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맥락을 제공한다. 4000년에서 3000년 전 사이, 미시시피 강 하류 계곡은 강수량 증가, 기온 하강, 그리고 잦은 홍수 등 심각한 환경적 변화를 겪었다. [포버티 포인트 앞 위치를 보면 미시시피 강 하류 연안임을 본다.] 

Southeastern Archaeology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이러한 변화는 지역적 환경 안정성에 영향을 미쳤고 북미 동부 전역에 광범위한 지형 변화를 초래했다.

키더와 그의 동료 세스 그룸스Seth Grooms는 이 토루를 순전히 실용적인 구조물로 보기보다는 환경 위기에 대한 영적인 대응을 나타낸다고 주장한다.

키더는 "이 토루가 건설될 당시 남동부 지역은 극심한 기상 악화와 대규모 홍수에 취약했다"고 말했다.

"퍼버티 포인트 주민들은 이 언덕을 쌓고, 의식을 거행했으며, 제사와 영적 제물로 귀중한 유물들을 남겼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해석은 모든 존재가 무한히 복잡한 존재의 그물망 안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인식하는 원주민의 세계관과 일치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은 자연재해가 무질서를 초래할 때 우주의 균형을 회복할 도덕적 행위와 책임을 지닌다. 토목 공사와 귀중한 유물의 매립은 경제 활동이 아니라 우주를 회복하기 위한 신성한 행위였다.

키더는 "서구의 관점은 그들이 경제적 가치가 없다면 그 먼 거리를 여행하고 그 모든 일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우리는 그들이 찢어진 우주를 복구해야 한다는 도덕적 책임감을 느꼈다고 생각합니다."

파버티 포인트에서 발견된 구운 점토 공clay-fired cooking balls과 기타 유물. (H. Roe/CC BY-SA 3.0)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곳에서 발견된 유물들은 이 유적의 지역적 중요성을 뒷받침하는 설득력 있는 증거를 제공한다.

고고학자들은 아칸소산 석영 수정quartz crystal, 애틀랜타 지역 활석soapstone, 그리고 오대호 구리로 만든 개인 장신구 등 먼 지역에서 온 재료들과 함께 수천 점 점토 구이용 공clay-fired cooking balls을 발견했다.

키더는 "이 사람들은 장거리를 이동하며 무역을 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이국적인 재료들은 단순한 교역품이 아니라, 의식 모임에서 바쳐진 제물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다양한 재료의 출처와 그 거리는 광활한 영토 전역의 사람들이 파버티 포인트에 모여 집단 의례 활동에 기여할 귀중한 물건들을 가져왔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모임은 사회적 유대감을 강화하고, 정보 교환을 촉진하며, 서로 다른 공동체 간 공통된 우주론적 신념을 강화했을 것이다.

키더의 이론은 노스캐롤라이나 럼비 족Lumbee tribe 일원인 그룸스를 포함한 아메리카 원주민 혈통을 지닌 사람들과 수년간의 대화를 통해 강화되었다.

키더는 "고고학자로서 우리는 다양한 사고방식에 열려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25년 5월과 6월, 키더와 바움가텔은 새로운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법과 현미경 기술을 사용하여 1970년대에 포버티 포인트에서 처음 파낸 구덩이를 다시 발굴했다.
 

포버티 포인트 발굴 트렌치서 포즈를 취한 고고학 대학원생 올리비아 바움가르텔Olivia Baumgarte. 사진 제공: 키더와 바움가르텔

 
키더는 "포버티 포인트 사람들이 그 토목 공사를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 생각하면 놀랍다. 그들은 지금도 저에게 영감을 준다"고 회상했다.

이 새로운 해석은 복잡한 수렵 채집 사회를 이해하는 데 있어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기념비적인 건축물이 반드시 사회적 위계와 영구적인 거주를 의미한다는 가정에 도전하며, 공유된 영적 신념과 환경적 관심에 의해 주도되는 대규모 협력이 가능한 정교한 공동체의 모습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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