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훈 교수께서 줄곧 동물고고학 이야기를 하고, 그 일환으로 닭과 꿩 사이에 얽힌 묘한 관계, 곧 두 날짐승 소비는 반비례한다고 강조한 바
그 핵심 요지는 꿩 소비를 많이 하는 사회에서 닭고기는 소비가 적다는 것이니,
닭소비가 한국사회 기준으로 급속도로 증가한 결정적인 시기는 근현대이며, 특히 나환자촌 독립이 결정적이었다고 나는 본다.
내 고향에도 이 집단 나환자촌이 있었는데, 이들은 주로 동네 기준으로 후미진 곳에 집단 강제 격리생활을 했는데, 그네가 생업을 위해 키우던 가축이 닮이었다.
이 닭은 종래 재래종과는 달라서 매일 알을 낳았고, 무엇보다 무정란이라 해서 교미 없이도 매일매일 알 하나씩을 선물했다.
재래종 닭? 계란 몇 개 얻어걸릴 수도 없었다. 우리 집에도 재래종 닭을 키웠지만, 계란? 귀하디귀하기만 했다.
전통시대 꿩과 관련한 가장 중대한 증언은 김춘추다.
삼국유사 권 제1 기이紀異 태종춘추공太宗春秋公 전에 의하면
왕은 하루에 쌀 서 말[三斗] 밥과 꿩 아홉 마리를 먹었다. 그러나 경신庚申;660)에 백제를 멸한 뒤로는 점심을 먹지 않고 다만 아침 저녁 식사만 했다. 그래도 하루에 쌀 여섯 말, 술 여섯 말, 꿩 열 마리를 먹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당시 사람들 식사 패턴이 지금이랑 마찬가지로 하루 세 끼였음을 추찰한다.
점심을 걸렀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는 좀 파고 들어야 한다. 김춘추는 왜 점심을 걸렀을까?
이게 도교에서 유래하는 모종의 기 수련과 관련 있을 것도 같고, 혹 불교 전통에 그 편린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아가 그의 주식은 쌀밥이었다. 이는 그만큼 쌀을 생산하는 시스템이 이미 당시 신라사회에는 자리를 잡았다는 뜻인데, 당시는 백제를 통합하기 전일, 이 쌀 주산지는 어디였을까?
낙동강변 어디였을 법한데, 이 문제도 심각성을 더한다.
꿩을 하루 열마리 내지 아홉 마리를 해치웠다? 물론 과장이 좀 섞이긴 했겠지만, 이로 보아 신라 지배층에서 육식문화로 꿩이 차지하는 막강 비중을 알겠다.
꿩 대신 닭. 이 말이 무슨 뜻일까?
이는 분명 꿩이 주된 소비 날짐승이었음을 증언하는 동시에, 닮과 꿩 그 보합 관계를 명징하게 보여준다 하겠다.
*** related article ***
까맣고 작은 돼지, 넘치는 꿩
'역사문화 이모저모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한테 복만 준다면야, 이시스와 아프로디테가 결합한 새로운 여신 (4) | 2024.10.01 |
---|---|
황남대총 앵무조개와 강소성 앵무조개 (4) | 2024.10.01 |
질리지 아니하는 박트리아 황금 (3) | 2024.09.30 |
일러스트레이션으로 복원해본 로마 공중화장실 (5) | 2024.09.29 |
파라오 황금 부적이 된 숫양 대가리 (2) | 2024.09.2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