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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하루에 꿩 열 마리를 해치운 김춘추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4. 9.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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꿩 중에서도 숫놈인 장기다. 이 아름다운 장기를 먹어야 하다니.



신동훈 교수께서 줄곧 동물고고학 이야기를 하고, 그 일환으로 닭과 꿩 사이에 얽힌 묘한 관계, 곧 두 날짐승 소비는 반비례한다고 강조한 바

그 핵심 요지는 꿩 소비를 많이 하는 사회에서 닭고기는 소비가 적다는 것이니, 

닭소비가 한국사회 기준으로 급속도로 증가한 결정적인 시기는 근현대이며, 특히 나환자촌 독립이 결정적이었다고 나는 본다. 

내 고향에도 이 집단 나환자촌이 있었는데, 이들은 주로 동네 기준으로 후미진 곳에 집단 강제 격리생활을 했는데, 그네가 생업을 위해 키우던 가축이 닮이었다.

이 닭은 종래 재래종과는 달라서 매일 알을 낳았고, 무엇보다 무정란이라 해서 교미 없이도 매일매일 알 하나씩을 선물했다. 

재래종 닭? 계란 몇 개 얻어걸릴 수도 없었다. 우리 집에도 재래종 닭을 키웠지만, 계란? 귀하디귀하기만 했다. 

전통시대 꿩과 관련한 가장 중대한 증언은 김춘추다. 

삼국유사 권 제1 기이紀異 태종춘추공太宗春秋公 전에 의하면 

왕은 하루에 쌀 서 말[三斗] 밥과 꿩 아홉 마리를 먹었다. 그러나 경신庚申;660)에 백제를 멸한 뒤로는 점심을 먹지 않고 다만 아침 저녁 식사만 했다.  그래도 하루에 쌀 여섯 말, 술 여섯 말, 꿩 열 마리를 먹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당시 사람들 식사 패턴이 지금이랑 마찬가지로 하루 세 끼였음을 추찰한다.

점심을 걸렀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는 좀 파고 들어야 한다. 김춘추는 왜 점심을 걸렀을까? 

이게 도교에서 유래하는 모종의 기 수련과 관련 있을 것도 같고, 혹 불교 전통에 그 편린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암꿩

 
나아가 그의 주식은 쌀밥이었다. 이는 그만큼 쌀을 생산하는 시스템이 이미 당시 신라사회에는 자리를 잡았다는 뜻인데, 당시는 백제를 통합하기 전일, 이 쌀 주산지는 어디였을까? 

낙동강변 어디였을 법한데, 이 문제도 심각성을 더한다. 

꿩을 하루 열마리 내지 아홉 마리를 해치웠다? 물론 과장이 좀 섞이긴 했겠지만, 이로 보아 신라 지배층에서 육식문화로 꿩이 차지하는 막강 비중을 알겠다.

꿩 대신 닭. 이 말이 무슨 뜻일까?

이는 분명 꿩이 주된 소비 날짐승이었음을 증언하는 동시에, 닮과 꿩 그 보합 관계를 명징하게 보여준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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