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제 발굴 발주처인 전북 익산시가 익산 미륵산성 2025년도 주요 조사성과라 해서 그 개요를 공개 배포했으니 이르기를
백제 사비기 저수조와 목간 출토
이를 야마로 잡았거니와
연못이란 말을 굳이 놔두고 저수조貯水槽라 해서 도대체 족보 없은 저런 용어는 한국고고학이 어디서 꿔다 쓰는지 알다가도 모르겠거니와


그에 더불어 목간木簡이란 이젠 그 존재 자체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어 간단히 글자를 새기거나 써 넣은 나무 막대라,
저런 표현보다는 실상 wooden tablet라는 영어 표현이 한층 간결하게 와 닿으니 내가 영어 사대주의자라서 그런지는 모르겠다.
암튼 이르기를 이 목간을 통해 미륵산성 성격과 축조시기 실마리를 풀 단서를 포착했다 하거니와,
살피면 성격은 목간으로 알 수가 없고, 축조 시기는 좁힐 만한 근거는 없지 아니해서 그 양상은 아래서 살피기로 하고
위선 그 발표를 따라가면
익산시는 (재)전북문화유산연구원(이사장 최완규)과 함께 지난해부터 진행 중인 익산 미륵산성 정상부(장군봉) 아래 평탄지 발굴조사 성과를 공유하고자, 오는 11일 오전 11시 현장에서 공개 설명회를 개최한다고
5일 밝혔다고 하거니와 이를 통해 이번 발굴을 수주한 기관이 저임을 알며,
나아가 그 수장이 전북 지역 고고학 터줏대감으로 군림하는 최완규 옹임을 알겠다.
한데 저 양반 아직도 현역이야?
암튼 다시 따라가면
익산 미륵산성은 '기준성箕準城'으로도 불리며, 해발 430m 미륵산 정상을 중심으로 사면과 계곡을 감싼 포곡식 산성으로 둘레는 약 1,822m에 달한다. 1990년부터 이뤄진 3차례 조사에서 통일신라 이후로 판단되는 문지(동문지, 남문지)와 치성을 비롯해 건물지, 집수시설 등이 조사됐으나 백제 유구는 확인되지 않았다.
고 하거니와, 이 말이 왜 중요한가는 그래서 저 부족한 부분을 확인하고자 이번에 집중해서 팠다! 이 뜻이 되기 때문이다.
이는 이번굴 조사 방향을 설정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대목이다.
왜? 발굴조사는 목적한 대로 대체로 흘러가는 까닭이다.

기필코 이번에는 백제 흔적을 찾아야겠다! 이리 결심하고 들어갔다는 뜻이다.
포곡식? 저런 말 눈꼽만큼도 중요하지 않다.
저런 말 이제는 한국고고학 현장에서 과거의 유물로 쳐박아 새로 즉위하신 대통령 말씀을 빌리건대 역사의 박물관으로 보내 버려야 한다.
이번 조사는 미륵산 정상부(장군봉) 아래에서 확인된 성토대지층과 이를 파고 조성된 석축 저수조에 대해 전면 발굴조사가 이뤄졌다. 조사 결과 석축저수조는 4차례 수·개축됐는데 최초 석축저수조는 원형으로 규모는 직경 6.7m, 잔존높이 1.0m, 9단 정도가 남아있다.
이 대목에서 이번 발굴성과 2대 성과 중 하나로 꼽는 석축 저수조, 그러니깐 간단히 말해 돌로 둘레를 쌓은 연못을 찾았다! 이 대목이 보인다.
이 연못은
위치상 미륵산 정상부에 가까워 수원(水原)의 확보가 어려운 점을 감안해, 이중으로 석축, 나뭇잎, 삿자리, 고운 점토 등으로 최대한 물을 가둘 수 있도록 축조한 것이 특징이다.
라 하거니와 이게 연못이 아니라면 무슨 개떡이란 말인가?

모든 산성은 물 확보가 관건이라, 모름지기 그 안에는 물을 가두는 연못이 있기 마련이고, 그런 연못은 반드시 물이 나는 계곡 인근에 만들게 된다.
이건 볼 필요도 없다. 반드시 있어야 하는 그런 연못이 나왔다 이 뜻이다.
그 연못은 계곡을 가로지른 성벽 바로 안쪽에서 확인되는 일이 항례다.
왜? 그쪽 말고 만들 지점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연못이 잦은 개보수가 있었던 모양이라, 조사단은 모두 4차에 걸친 개보수를 확인했다 했지만, 그렇게 판단할 근거가 있기는 했겠지만, 4.5회인지 5.5회인지 모른다. 연못은 수시로 보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암튼 큰 건으로 그만한 횟수가 보인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나아가 처음에는 공중에서 내려다 볼 적에는 둥글에 만들었는데 나중에 개보수하면서 바깠다! 이런 뜻이 되겠지만, 그걸 어떤 식으로 바깠는지는 아직 서술이 뵈지 않는다,
원형 석축저수조는 무른 암반을 파고 바닥에 80㎝ 정도 점토를 채운 뒤 나뭇잎과 삿자리, 편평한 바닥돌을 순차적으로 깔았다. 저수조 벽석 외부는 점토를 다져 방수했으며 그 폭은 1.6m이다. 외곽에는 깬돌을 사용해 최대 6단의 차수벽을 돌렸는데 현존 높이는 1.5m이다.
* 삿자리 : 갈대를 여러 가닥으로 줄지어 매거나 묶어서 만든 자리
앞에서는 잔존이라 하다가 이쪽에서는 현존이라 했으니, 잔존이라는 말도 이제는 피해야 한다.
그렇담 이 연못은 언제 만들었는가?
석축저수조의 내부에서는 삼족토기·개배·병형토기·단경호 등 백제토기를 비롯해 가야계 심발형토기, 고구려계 장동호長胴壺·암문토기·옹형토기 등의 토기류가 출토됐다.
* 암문토기 : 토기의 표면을 단단한 도구로 문질러 새겨진 문양이 있는 토기
이거 분명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알림인데 왜 보도자료를 이 따위로 쓴단 말인가?
담당 팀장 불러다가 조목조목 따져야겠다.
내가 아는 그 조모 팀장인가? 암튼....
이와 함께 목간, 가공목, 건축부재 등 다량의 목재 유물도 발견됐다. 특히 백제 사비기로 추정할 수 있는 간지(干支)명이 적힌 '병신년정월기...(丙申年正月其...)' 묵서명 목간이 출토돼 미륵산성 축조와 운영 시기를 밝힐 수 있는 단서로 주목된다.
그래 이 시점에서 이 연못은 백제가 처음에 만들었다! 이런 서술로 이어진다.
당초 목표로 잡은 백제 성곽으로 볼 만한 여지를 찾은 셈이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조사단 추정이라는 점은 하시라도 잊어서는 안 된다.
물론 나 역시 저 정도면 백제라 보지만 말이다.
또한 미륵산 정상부 아래에 성토대지 조성 후 석축저수조를 만든 입지적 특성과 아가리를 깬 토기 등이 출토된 점은 제의와 관련된 시설일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향후 목간 판독, 토기분석, 연대측정 등을 통해 시기와 성격이 더욱 명확해질 것으로 보인다.
* 제의(祭儀) : 제사를 지내는 의식
아가리를 깬 토기가 출토된 지점 표시가 없다! 어디서 이런 고의로 깨뜨린 토기가 나왔단 말인가?
보도자료라는 한계가 있기는 하겠지만, 너무 소략하다.
같은 분량이라도 얼마든 알찬 정보를 담을 수 있지만, 많은 의문이 누락했다.
언제 기회 봐서 학술자문위라나? 하는 자료를 입수해 분석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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