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섬서성 서안西安 고신구高新区 건설 현장 지하에서 고고학자들이 중요한 발견을 했다.
2021년, 섬서성고고연구원은 북위 시대 무덤 32구를 발굴하여 서안 지역에서 처음으로 북위北魏 평성平城시대 가족묘 완전 유적을 확인했다. [발표를 지금 한 모양이다]
귀중한 명문이 있는 벽돌과 기와를 통해 양씨杨氏 가문을 중심으로 최소 30년 이상 사용한 "집단묘"가 발굴된 것이다.
2월 6일, 섬서성고고연구원 프로젝트 책임자이자 부큐레이터인 웨이청魏铖은 이번 발굴이 장안과 그 주변 지역의 북위 평성 시대 가족묘와 연대가 확인된 무덤에 대한 고고학적 기록의 공백을 메워준다고 지적했다.
이번 발굴의 가장 중요한 측면은 연대가 명확하게 확인된 유물들이 발견되고 묘지의 전체적인 구조가 드러났다는 점이다.
무덤 중 두 곳은 수도가 평성(현재 산서성 대동大同)에 있던 북위 효문제孝文帝 태화太和 8년(484)에 조성되었고, 나머지 하나는 수도가 낙양으로 옮긴 후인 선무제宣武帝 현창延昌 2년(513년)에 조성되었다.
발굴팀은 연대가 확인된 무덤들 위치(동쪽은 초기, 서쪽은 후기)와 외곽으로 갈수록 분포하는 무덤들을 바탕으로, 이 공동묘지가 동쪽에서 서쪽으로 질서정연하게 배치된 가족묘지이며, 최소 30년 이상 지속적으로 사용되었음을 확인했다.

이곳은 서안 남부 교외에서 발견된 최초의 평성시대 가족묘지로 연대가 확인되었다.
웨이청은 "이전에는 서안 지역에서 연대가 있는 북위 시대 무덤은 극히 드물게 공개되었으며, 남부 교외에 위치한 고분들은 모두 북위 말기로 추정되었다. 서안 동부 교외에서 발견된 주원백朱元柏 무덤(483년)은 이보다 약간 이른 시기였지만, 이는 극히 드문 사례였다. 이번에 발굴된 전봉촌 묘지前锋村墓地는 서안 남부 교외에서 발견된 최초의 북위 평성시대 가족묘로, 연대가 확인된 완전한 형태를 갖추고 있어 '연대 측정의 기준점'으로서의 중요성과 사회적 가치가 더욱 두드러진다"고 밝혔다.

고분에서 발굴된 벽돌과 기와에 새긴 명문은 고인의 신원을 확인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한 명문에는 "두현 백성 양대경 무덤杜县民杨大景墓"이라고 새겨 무덤 주인이 평민이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또 다른 기와명에는 무덤 주인이 "양집杨集"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그의 관직은 "호군护军"이었다.
위성魏城은 "호군은 북위 초기, 한족 이외 민족이 거주하는 지역에 설치된 군관직으로, 일반적으로 현縣 내 한족 이외의 민족의 일을 관리하는 책임을 맡았다"고 설명했다.
전반적으로 이 무덤들은 신분이 낮은 사람들이 묻힌 것으로, 주로 양씨 성을 가진 평민이나 하급 관리들 정착지였음을 보여준다.

조사팀은 무덤 위치를 바탕으로 무덤들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질서정연하게 배치되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모든 무덤 통로는 남쪽을 향하는데, 이는 한나라와 진나라 시대 전통을 계승한 배치다.
무덤들은 모두 길고 경사진 통로가 있는 토굴 무덤[长斜坡墓道土洞墓]으로, 가장 긴 통로는 길이가 30미터에 달한다. 여러 명을 함께 매장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웨이청은 북위 평성 시대에 서안 지역은 역사적으로 정치 중심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고 인구도 적어 진, 한, 수, 당 왕조 시대보다 훨씬 적은 무덤이 존재했다고 덧붙였다.
따라서 이렇게 잘 정돈되고 완벽한 가족 묘지가 발견된 것은 매우 귀중한 의미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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