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런저런

언제 써먹을지 모르는 미리 쓴 obituary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5. 11. 26.
반응형
고 이순재 선생

 
아마 기자들이 다 준비를 했을 법한데, 그제 타계한 배우 이순재 선생의 경우 워낙 고령인 데다 근자 이상징후를 알리는 경보음이 여러 번 울렸으니, 부고는 미리 써 놨으리라 본다. 

이미 말했듯이 내가 저쪽 문화부장 시절에는 문화 각 부문별로 준비해야 하는 리스트를 뽑아 담당 기자들한테 미리 부고기사를 써놓게 하기도 했으니, 그 미리쓴 부고에는 타계 시점과 타계 이유를 밝히는 부문이 공란으로 비게 된다. 

물론 이것이 생각만큼 잘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기자들이 귀찮아 한다. 얼마나? 매우매우 귀찮아 한다. 그래서 대체로 부장 말이라 해서 아예 쌩깔 수는 없는 노릇이고, 듣는 시늉이나 하다 마는 일이 많다.

나아가 무엇보다 기자들이 자주 바뀌니 내가 써 먹을 기사도 아닌데 누가 그리 애착하겠는가? 

나 역시 그러한 그네들 심정을 알기에 더는 채근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언제 쓰일지도 모르는 그 기사에 누가 혼신하는 힘을 담겠는가? 나아가 역시 기자는 일단 닥쳐야 움직이는 손끝이 있는 족속이라, 막상 죽었다는 소식이 들어와야 우당탕탕하는 손맛이 있다. 

저 연극 배우로 꼽은 분으로 내가 기억하는 이름에 이순재 선생을 필두로 신구 박근형 백일섭을 필두로 하는 꽃보다 할배 멤버들과 최불암 오지명으로 대표하는 수사반장 멤버들, 그리고 기라성 같은 노여배우들이 있었고, 조용필 나훈아 선생께는 미안하나, 이 양반도 이젠 연세 하도 연만해서 준비를 단단히 해두어야 한다. 

익히 말했듯이 제일로 황당한 분이 김수환 추기경이었다. 이 양반은 선종하시기 이미 10년 전에 우리 문화부 대선배이신 임형두 기자가 미리 써 놓은 것이 있어 그것이 어찌하여 사내 전산 저장고에 지워지지도 않고 내려왔으니, 막상 저 양반이 선종했을 때 꺼내어 보니 도저히 써먹을 수가 없었다. 

첫째 써놓은지 10년이나 지나서 선종했으니 그 빈공간 채워야 할 것이 너무 많았고, 둘째, 표기라 당시는 한자를 본문에 그대로 한글 병기도 하지 않고 적기하던 시절이라 일일이 바꿔야 했던 데다, 셋째, 전산시스템이랄까 이런 게 도저히 맞지 않아 글자가 깨지고 난리였다. 

저 이순재 선생의 경우, 내가 문화부장 시절에 써 놓은 것이 있을지 모르겠고, 그렇게 써놓은 것이 혹 이번 타계 기사에 먹혔는지 모르겠다. 

외국 유수하는 언론에는 부고 담당 전문기자가 따로 있다. 내가 떠난 저 회사에서도 이충원 기자가 부고를 전담하는데, 이런 기자가 필요하다. 

참 야박하다 할지 모르겠지만, 저런 분들은 미리미리 부고 기사를 써 놔야 한다. 특히 부고 전문기자의 경우에는 시시각각 저런 분들과 관련하는 특기 사항, 혹은 진전 사항들을 차곡차곡 채워나가야 한다. 

물론 이런 일로 적지 않은 해프닝이 생기기도 한다. 이런 일은 국내 언론에서는 잘 띄지 않고 외국 유수 언론에서 더러 발생해 웃음을 주기도 하는데, 미리 써놓은 부고기사 송고키를 잘못 누르는 바람에 난리를 치는 일이 있다. 

훗날 결국 죽기는 했지만 그 유명한 코미디언 봅 호프도 그랬고, 기타 몇 명 내가 언뜻 기억나지 않는 저명한 인사 죽이기 부고 기사 해프닝도 있었다.

또 외국의 경우 저명한 인사의 경우(그가 반드시 정치인일 필요는 없다.) 아예 지면을 통째로 들어내서 그 사람 생애를 조명하는 일에 할당하는 일도 빈발하는데, 이는 그만큼 저쪽 언론에서는 부고 기사 비중이 크다는 증좌다. 

저런 뜻하지 않는 오보에 대한 반응 역시 대체로 다른데, 우리의 경우 쳐죽일 놈이 되어 역시 기레기라는 비난을 쳐먹기 십상이지만, 저네들은 대체로 보면 웃어 넘기고, 그 웃어넘기는 재치가 보통이 아니어서 훈훈함을 주기도 한다. 

솔까 까구로 생각해 보면, 내가 그만큼 유명한 사람이니 내가 죽을 때를 대비해 저런 기사까지 준비해 두었다는데 얼마나 고마운가? 

우리의 경우 요새야 내가 신문 지면을 보지 않으니 잘 모르겠다만, 이순재 선생 타계 같은 일은 1면 톱을 통째로 들어내야 하고, 문화면 본판은 아예 그의 족적을 탐구해야 한다고 본다. 

언젠가 있을 조용필 나훈아는 또 어때야 하겠는가? 나는 이 분들을 국장으로 보내드려야 한다고 본다. 
 
죽기만 기다리는 기자들, 긴즈버그의 경우

죽기만 기다리는 기자들, 긴즈버그의 경우

Ruth Bader Ginsburg, Supreme Court’s Feminist Icon, Is Dead at 87 The second woman appointed to the Supreme Court, Justice Ginsburg’s pointed and powerful dissenting opinions earned her late-life rock stardom. 미국 연방대법관 긴즈버그가 죽

historylibrary.net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