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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당사3

말이 좋아 항해인 견당사 한강유역을 점유하기 전의 신라와 백제가 망한 후의 왜는 닮았다. 한반도 남해안-서남해-서해를 거쳐 북상해서 황해를 건너뛰는 항로는 앞에 쓴 글처럼 그 기원은 청동기시대까지 올라감이 분명한데-. 사실 이것이야 말로 요하 이동에서 일본에 이르는 지역의 문명의 젖줄이나 다름없었다. 나중에 자세히 쓰겠지만 이 항로는 오래된 것만큼이나 정보축적이 많아 난구간도 있다고 하지만 비교적 용이하게 발해만과 황해 지역을 오갈 수 있게 만들었다. 청동기시대-원삼국시대의 거의 모든 문화적 교류는 이 항로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 분명하고 일본 야요이시대도 이 항로에 의해 개시된것이 분명하다. 앞서 쓴 것처럼 한강유역 점유하기 전의 신라와 백제멸망후 왜는 매우 닮은 상황이었는데. 왠고하니 중국과의 교류를 위해서는 백제의 눈치나 협.. 2023. 5. 1.
돌아갈 배가 언제 올지 모르는 일본 일본의 견당사遣唐使 이야기인데, 기록을 보면, 견당사는 중국 쪽에서는 대략 30년에 한 번 정도 오기를 희망한 듯하다. 하지만 어느 시대의 조공사가 그렇듯이 일본은 이보다 훨씬 자주 보냈다. 하지만 시도때도 없이 배가 오가는 것은 아니어서 대략 길면 십수년 정도의 간격이 있었던 것이다. 일본에서는 당 유학생을 대략 이 견당사에 실어 보냈는데, 앞서 언급한 일본 천태종과 진언종 개조인 사이초[최징最澄]와 구카이[공해空海]는 804년에 파견된 제 16차 견당사를 따라갔는데, 이때 총 4척의 배가 중국으로 향했는데 그 중 1척은 난파, 1척은 실종되고 2척만 중국에 도달하였다. 일본에서는 당나라까지 보내는 배의 운항 기술은 항상 위태로울 수 밖에 없었는데, 중국을 오가는 배편이 항상 있는 것이 아니라서 원거리.. 2023. 4. 23.
일본국 견당사 길비진비吉備真備가 쓴 것으로 보이는 중국묘지명 "중국 뤄양 묘지석서 8세기 日유명학자 글씨 확인"송고시간 | 2020-01-01 08:30기비노 마키노 유묵 추정…"일본과 중국 관계 연구자료" 이 소식은 내가 우연히 중국학 전공자인 어느 구미권 사람 페이스북 포스팅에서 접한 것이니,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그가 인용한 자료를 보니 아래 아사히신문 영어판이었다. Ancient Chinese epitaph penned by Japanese found in ChinaTHE ASAHI SHIMBUNDecember 26, 2019 at 19:00 JST 읽어보니, 나름 설득력이 상당하다고 생각해, 보도날짜는 며칠이 지나긴 했지만, 더구나 그 묘지명이 당이 한창 융성하던 시기라, 동아시아 세계사에서도 의미가 적지 않다고 판단해서 우리 역시 다루기로 한 것이다. .. 2020. 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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