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고려 현종5 한달간 병석에 누웠다가 간 “중흥의 군주” 고려 현종 전통시대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군주의 죽음을 기록하는 일정한 패턴이 있다. 보통 왕이 언제 불예不豫하다 하고는 보통은 그 이튿날 아니면 사흘째에 붕崩 혹은 훙薨이라 뜬다. 군주한테 쓰는 불예不豫를 보통 몸이 편치 않다는 정도로 옮기지만, 그 자체 중병에 대한 완곡어법이기는 하지만, 실상 이 말이 쓰이는 맥락을 보면 회복 불능한 중태라는 뜻이다. 고려 제8대 임금 왕순王詢은 그 점에서 특이하다. 중태에 빠진지 한달만에 숨을 거두기 때문이다. 뇌출혈이나 뇌일혈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강하게 준다. 고려사와 절요에 의하면 재위 22년째인 1031년 4월 28일 을사에 병져 누운 그는 대략 한 달 뒤인 다음달 5월 25일 신미에 중광전重光殿에서 훙서한다. 왕이 병이 위독해지자 태자 왕흠王欽을 불러 뒷일을 부탁하고는.. 2024. 2. 19. 오줌 싸서 고려 현종 낳은 경종비 청상과부 황보씨 (3) 땅끝마을 유배지에서 쓸쓸히 죽은 왕건의 8번째 아들 왕건의 무수한 아들 중 한 명으로 넘버 8인 왕욱王郁은 죽은 시점이 성종 15년, 서기 996년 7월이라는 사실이 남았으나 언제 태어났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의 어머니가 신성왕태후神成王太后 김씨金氏라 하고, 또 그가 언제 왕건과 혼인했는지는 남았으니, 그가 태어난 시점을 범위를 좁힐 수는 있다. 위선 두 사람은 신라가 고려에 투항한 시점에 고려 왕실과 신라 왕실의 교환 결혼에서 성립했음을 앞에서 보았으니, 즉 귀순한 신라 경순왕한테 왕건이 자기 딸 낙랑공주는 주는 대신에 왕건 자신은 경순왕의 큰아버지 김억렴의 딸을 맞아들였으니, 이때가 935년 9월이다. 따라서 왕욱은 936년 이후에 태어나야 한다. 다음으로 왕건은 943년 5월 20일 정유에 향년 67세로 사망했으므로 유복자라 해도 944년 이전.. 2024. 1. 13. 강조康兆의 변變, 앞뒤가 안 맞는 고려사 미스터리 목종이 승려가 된 대량원군(훗날의 현종)을 궁중으로 불러들였다는 건 죽음을 앞둔 후계자 지명이다. 회생 불능이라 판단한 목종은 태조 왕건의 혈육(손자)인 대량원군을 환속시켜 보위를 물려주려 했다. 이미 죽음을 앞둔 왕이었다. 분란이 생길 것을 우려해 그 후견인으로 목종은 서부지역 사령관 강조에게 군사를 이끌고 들어와 호위하라 했다. 근데 강조가 칼을 거꾸로 돌려 목종한테 겨눴다고? 왜? 목종을 폐위케 하고 유배를 보냈다고? 그리고 자객을 보내 죽였다고? 죽음을 앞뒀다는 그가 살아났다고? 안 맞자나? 이미 죽음이 눈앞에 둔 왕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간다. 강조康兆의 변變 도대체가 이 난은 원인과 결과를 설명하지 못한다. 내가 이 난을 접하게 되기는 중학교 때 처음이었을 것이니, 그때부터 지금까지.. 2024. 1. 10. 천년전 한반도를 몰아넣은 지진 공포 고려사 세가를 보면 현종 시대 경주 일대를 중심으로 지진이 다발함을 본다. 그 왕 16년(1025) 을축년을 보면 • 여름 4월 신미일에 영남도(嶺南道)의 광평군(廣平郡 성주군)·하빈현(河濱縣 달성군) 등 열 개 고을에 지진이 발생하였다. 하고 같은달 임신일과 을해일. 지진이 다시 발생했다고 했으니 아마도 대규모 지진에 따른 여진인 듯하며 같은 해 가을 7월 정해일에는 경주(慶州)·상주(尙州)·청주(淸州 )·안동(安東)·밀성(密城 밀양)에서 지진이 발생했다 했으니, 이건 역시 진앙지를 경주 일대로 보아야 할 듯 싶거니와 진동이 경상도를 넘어 청주까지 미쳤으니, 강진이었음에 틀림없다. 나아가 현종 3년(1012) 임자년 3월 경오일에 경주(慶州)에 지진이 일어났다 하고, 이음해 4년(1013) 계축년 봄 .. 2021. 11. 16. 왕자 낳았대서 원주院主에서 궁주宮主로 격상한 고려 현종의 후궁 《고려사》 권4, 세가世家4 에 보이는 구절이다. 현종원문대왕顯宗元文大王은 이름이 순詢이며, 자字가 안세安世다. 안종安宗의 아들로, 모친은 효숙왕후孝肅王后 황보씨皇甫氏다. 성종 11년(992) 임진년 7월 임진일에 태어나, 조금 나이가 들자 대량원군大良院君에 책봉되었다. 열두 살이 되던 해에 천추태후千秋太后가 그를 꺼려한 나머지 강제로 머리를 깎아 승려가 되게 했다. 처음 숭교사崇敎寺에 있을 때 어떤 승려가 꿈을 꾸었으니, 큰 별이 사원 뜰에 떨어지더니 용으로 변했다가 다시 사람으로 변하는 내용이었으니, 이 사람이 곧 왕이었다. 이 일 때문에 여러 사람이 그를 특출하게 여기게 되었다. 목종 9년(1006) 삼각산三角山 신혈사神穴寺로 옮겨 살게 되자, 천추태후가 여러 차례 사람을 보내 해치려고 했다. 마침.. 2020. 10. 31. 이전 1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