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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제8

과거와 고려시대 문신 조선시대 문과나 고려시대 문과나 그 권위에 있어서는 별 차이 없다. 고려시대를 "귀족사회"라고 정의하니 고려시대에는 과거제를 거쳐도 귀족 자제가 음서를 한 것보다 시원치 않아 중하위 관료층을 형성했을 것 같지만 고려시대에 좀 힘 좀 쓰고 유명한 문관치고 과거 급제자가 아닌 사람은 거의 없다. 문과 급제자를 보자. 편의상 고려후기는 이미 과거제가 정착한 것은 잘 알려져 있으므로 전기의 관료 중 이름 석자 대면 알 만한 사람들만 적어본다. 강감찬: 성종 3년 과거 급제 윤관: 문종대 문과 급제 김부식: 숙종대 문과 급제 정지상: 예종대 문과 급제 강민첨: 목종대 문과 급제 김돈중: 문종대 문과 급제 문극겸: 문종대 문과 급제 서희: 광종대 과거 급제 오연총: 문종대 문과 급제 윤연이: 예종대 문과 급제 최충.. 2023. 7. 26.
고려의 교육열을 증언하는 고려도경의 구절들 백성[民庶] 신(臣)이 듣기에, 고려는 영토[地封]가 넓지 않으나 백성은 매우 많다. 사민(四民)의 업(業) 중에 선비[儒者]를 귀하게 여기므로, 고려에서는 글을 알지 못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 산림은 매우 많고 땅은 평탄한 데가 적기 때문에, 경작하는 농민은 장인[工技]에 미치지 못한다. 주군(州郡)의 토산물[土産]은 모두 관아[公上]에 들어가므로, 상인[商賈]들은 멀리 돌아다니지 않는다. 다만 대낮에 시장[都市]에 가서 각각 자기에게 있는 것으로써 없는 것을 서로 바꾸는 정도에 만족한다. 그러나 고려 사람들은 은혜를 베푸는 일이 적고 여색[色]을 좋아하며, 쉽게 사랑하고[泛愛] 재물을 중히 여긴다. 남녀간의 혼인에서도도 가볍게 합치고 쉽게 헤어져註 001 전례(典禮)를 본받지 않으니 참으로 웃을 .. 2023. 6. 18.
못 배운 한에 대하여 한국은 과거제가 천년을 간 나라다. 이 부분이 갖는 의미를 간과하기 쉬운데, 고려사절요만 봐도, 고려시대부터 이미 식년시는 정례화해 있었다. 3년에 한번씩 고려시대에는 34명 (조선시대와 달리 33명이 아니다) 꼬박 꼬박 급제자가 나왔다. 이것은 대단한 것이다. 3년에 한번씩 34명씩 뽑아 올려도 3년 후에 다시 뽑아 올릴 인재풀이 있다는 소리니까. 고려도경을 봐도 고려시대는 과거제에 기반한 사대부 사회로 이러한 전통은 조선이 망할 때까지 갔다. 일제시대, 식민지조선이 다른 식민지와 달랐던 점은 배워야 한다는 점을 식민지 조선인에게 이야기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공부하면 출세한다는 것을 조선인들은 다 알았다. 돈이 없고 학교가 없어 못 갔을 뿐이다. 돈이 없어 학교를 못갔으니 한이 생길 수밖에 없다... 2023. 6. 18.
고려는 귀족사회가 아니다 이 글은 여기 여러 번 쓰는 것 같고 김단장도 비슷한 의견을 가지고 계신 것으로 아는데, 고려는 귀족제가 아니다. 학계 논의를 보면, 고려가 귀족제라고 한다면 무엇을 귀족제라고 부르는 것인가 하는 논의가 자주 반복되는 것을 보는데 이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쉽게 말해서 귀족제라고 먼저 정의해 놓고 그게 뭔지를 설명하는 꼴이라는 것이다. 고려, 특히 무신정권 이전을 굳이 귀족제라고 구분해 놓는 이유는 필자가 보기엔 이렇다. 첫째, 무신의 난 이전과 이후에 뭔가 시대적으로 큰 변화가 있어 다른 사회로 불러야 할 것 같다는 생각. 둘째, 여말선초의 개국 세력을 "신진사대부"로 붙여 놓은 이상 고려 전기는 더더욱 이 시대와는 다른 사회로 불러야 할 것 같다는 생각. 셋째, 뭔가 고려전기는 중국의 당대 이전,.. 2023. 3. 1.
우습게 볼 수 없는 고려 전기의 문화적 역량 앞에 최충 이야기를 적었지만, 고려시대에는 송과 상당 부분 동시기에 관심사를 공유하여 동기화하고 있었던 것 같은 징후가 많다. 우선 앞에서 쓴 것처럼 11세기가 되면 고려는 과거제가 안정적 운영 단계에 접어들어 전형적인 사대부사회 모습을 띠게 되었다고 본다. 고려전기에 사학 12도라는 것이 있었다고 하는데 사학 12도가 왜 나왔겠는가? 결국 과거에 합격하기 위해서인 것이다. 2-3년에 한번씩 20~30명씩 급제자를 계속 낼 수 있는 문화적 역량은 결코 얕보기 어렵다. 실제로 거의 비슷한 시기에 과거제도를 도입한 베트남을 보면 급제자 수도 들쭉날쭉이고 고려처럼 안정적인 급제자를 상당기간 내지 못했다. 과거제도가 안정화한다는 것은 그 배후에 식자층이 굉장히 두텁게 존재했음을 의미한다. 개인적인 견해를 전제로.. 2022. 11. 21.
과거제의 효용성을 다시 생각한다 이하는 저와 동 제목으로 January 27, 2014에 긁적인 글이다. 지금 와서는 손대야 할 대목이 적지 않으나, 그때 나름의 생존 의의가 있다 생각해 그대로 전재한다. 예서 과거제란 점수 줄 세우기를 말한다. 지금의 수능은 전연 내가 아는 바가 없으므로 그 전 단계인 학력고사까지 포함하겠다. 줄세우기를 골자로 해서 그것을 통해 관료를 선발하는 과거제는 기록에 의하면 수나라에서 처음 시작했다 하지만 제대로 되지 않다가 唐왕조가 개창하고 나서 시행착오를 거쳐 이미 중당 이후가 되면 과거 출신자가 아닌 자에 대한 차별이 극심화한다. 이런 제도는 간단없는 비판에 시달렸으니, 가장 유력한 반론 근거는 인재의 선발과 적재적소 배치를 가로막는다는 것이었다. 그에 의해 그 이전 효렴孝廉이니 현량賢良이니 방정方正이.. 2020. 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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