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대왕암5 문화재로 재발견한 신라 문무왕 수중릉 대왕암 수위 조절하느라 무척이나 애를 먹은 기고문이 나왔다. 올해가 문무왕 수중릉 발굴 오십주년이라 해서 신동아 의뢰로 관련 글을 초해봤다. 동아일보에서 일하다가 이 잡지로 파견나간 권재현 기자가 좋은 자리를 주선했다. 1967년 5월 16일 한국일보는 문무왕 수중릉인 대왕암을 발견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그 직후 다른 신문도 같은 보도를 했지만, 엄밀히 이는 발견이 아니라 '재발견'이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써의 재발견인가? 지금의 대왕암이 문무왕 수중능이라는 사실은 적어도 우리에게 주어진 자료에 의하는 한, 고려시대 이래 죽 그랬다. 나는 문화재로서의 재발견이라고 본다. 수중릉은 자연히 주어진 그 무엇이 아니다. 그에다가 문화재라는 가치를 주입하고, 그럼으로써 그것은 소위 발견 직후인 1967년 7월 국가.. 2021. 2. 21. East Sea by Daewangam Rock Islet Daewang-am 대왕암 大王岩, or the Great King's Rock, about 200m off the coast here, is the undersea tomb of Munmu-wang 문무왕 文武王 ( r. 661~681), the 30th ruler of the Silla Kingdom(57B.C ~ 935). It is said that the King was cremated in a Buddhist ritual and his ashes buried here according to the King's instruction that he be cremated and buried in the East Sea so that he could become a dragon to protect S.. 2019. 8. 11. Daewang-am, or the Great King's Rock | 文武大王陵大王巖 | 문무대왕릉 대왕암 Daewang-am, or the Great King's Rock, about 200m off the coast here, is the undersea tomb of Munmu-wang(661~681), the 30th ruler of the Silla Kingdom(57B.C~ 935). The rocky islet about 20m long has a small pond at the center and at the bottom of it is a granite stone 3.6m long, 2.9m wide and 0.9m high. It is said that the King was cremated in a Buddhist ritual and his ashes buried here according.. 2019. 6. 15. 문화재와 국가주의 망령 - 석굴암과 무령왕릉의 경우 문화재와 국가주의 망령 - 석굴암과 무령왕릉의 경우 *** 이 글은 사단법인 한국박물관협회가 발간하는 소식지인 《박물관소식》 2002 3․4호에 ‘특별기고’ 형태로 투고한 글 전문이다. 석굴암을 감도는 유령이 있다. 국가주의와 국민주의가 응결된 국민국가주의라는 망령이 그것이다. 한국인은 석굴암과 함께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마감한다. 하루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TV는 장중한 애국가를 들려주며 그 배경으로 석굴암을 빼놓지 않고 있는 것이다. 석굴암이 훌륭한 문화유산의 하나임을 의심하는 이는 없다.다만 여기서 이런 의문을 품어봐야 한다. 석굴암을 ‘반만년유구한 한민족의 가장 위대한 문화유산’으로 만든 주인공은 과연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그렇게 했는지를 이제는 되짚어보아야 한다. 이러한 반추 과정이 왜 필요.. 2018. 2. 12. 발견 50주년 문무왕 수중릉은 실재인가 신화인가? 발견 50주년 문무왕 수중릉은 실재인가 신화인가? 김태식 | 국토문화재연구원 연구위원·문화재 전문언론인 2017년 03월 호 2001년 4월 28일 오후 KBS 역사스페셜 ‘최초 발굴, 신라 대왕암’ 편을 시청하다 눈을 의심하는 장면을 마주했다. 대왕암을 발굴하는 게 아닌가? 그것도 방송사가 말이다. 물론 발굴 자격이 없는 방송사가, 그것도 신라 문무왕 수중릉이라 해서 1967년 5월 15일에 소위 ‘발견’되고 같은 해 7월 24일 국가사적 제158호로 이름을 올린 대왕암을 직접 발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에 방송사는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 의뢰해 발굴조사를 벌였다. 하지만 분명 발굴 시행처는 KBS였다.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방송사가 나서서 직접 발굴하는 일은 견문이 짧아서 그런지 모르지만 금시초문이.. 2018. 1. 20. 이전 1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