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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13

안중근 의사 유족을 모시고 함께한 시사회 by 이주화 (안중근의사기념관 학예연구사) 안중근 집안(조부 안인수를 정점으로 하는 팔촌친 공동체)에서는 현재까지 독립유공자 16분을 배출했다. 어느 집안도 이를 따라갈 수 없는데 이렇게 한 집안에서 대거 독립운동을 하면 그 가문의 경제적 기반이 송두리째 날아가기 마련이다. 한양 제일 갑부라던 이회영 육형제는 전 재산을 털어 서간도에 신흥무관학교를 세웠는데 그 형제 중 이석영 선생은 말년에 상해에서 두부 찌꺼기로 연명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황해도 해주에서 부유하기로 이름난 안중근 집안도 예외는 아니어서 원래 풍족하던 가산을 안중근 생전에 국채보상운동 참여와 삼흥학교 설립에 크게 소모하고(석탄회사와 채표회사 경영도 실패) 나머지 가산은 안중근 사후 온 식솔이 국외로 망명하면서 사라져버렸다. 근거지를 잃은 .. 2022. 12. 23.
안중근의 아들로 산다는 것, 안준생의 경우 안중근의 아들 안준생(1907~1952)은 흔히 호부견자虎父犬子의 대명사로 불리며 한국근대사의 아픈 손가락으로 남아있다. 영웅의 아들로 태어났으되 그 시대의 무게를 온전히 짊어지지 못한 탓이다. 일제를 피해 상해에서 지내던 그의 삶은 하얼빈의거 30주년(이토 사망 30주기)이던 1939년 '만선시찰단' 일원으로 서울을 방문하면서 뒤틀린다. 이른바 "박문사 화해극"에 동원되어 이토의 아들과 만나 일련의 퍼포먼스를 벌인 것이다. 안중근의 아들과 이토의 아들이 나란히 찍힌 사진은 언론에 일제히 대서특필 되었고 이 사건은 식민통치 당국에게는 우월감을, 독립운동 계열에게는 좌절을 가져왔다. 이후 상해로 돌아간 안준생은 양측으로부터 철저히 버림받고 멸시에 시달려야 했다. 해방 이후에도 바로 귀국하지 못하고 국공내전.. 2022. 9. 15.
기자가 찾은 자료를 도둑질한 어떤 놈 기자로서 어떤 시리즈를 하고 난 더러운 느낌 중 하나가 그걸 인용 표시도 없이 베껴먹는 이른바 직업적 학문종사자가 그리 많다는 점이다. 일전에 안중근 특집을 하고 그 와중에 안중근 유족 동향과 관련한 중대한 문서를 발굴해 공개한 적이 있는데 그 직후에 나온 그 어떤 저명한 한국 근현대사가가 지가 그 문서 발굴한 것처럼 해서 버젓이 논문과 책에 써먹는 꼴을 보며 구토가 났다. 이러지는 맙시다. (2014. 1. 31) *** 저에서 말한 안중근 유족 동향과 관련한 중대한 문서가 바로 아래 기사에서 인용한 쇼와(昭和) 14년(1939) 10월 17일 조선동촉부에서 작성한 '재(在) 상해 조선인 만선시찰단 선내(鮮內.조선 내부) 시찰 정황'이라는 일본 외무성 경찰사 자료다. 이에서 소개한 이 자료를 문제의 어.. 2021. 1. 31.
언터처블 안중근 민주, 추미애 엄호…안중근 비유에는 "오버했다" 자성 2020-09-17 11:40 홍익표 "김종인도 개천절집회를 3·1운동에 비유…서로 자제해야" 민주, 추미애 엄호…안중근 비유에는 "오버했다" 자성 | 연합뉴스 민주, 추미애 엄호…안중근 비유에는 "오버했다" 자성, 이대희기자, 정치뉴스 (송고시간 2020-09-17 11:40) www.yna.co.kr 전 정권이야 도둑질로 망했지만 이 정권은 철면피를 썼는지 그걸로 무장하고는 까불다가 망해가는 게 아닌가 싶다. 아무리 정치가 낯뚜껍들 세상이라 해도, 깝쭉대기는 또 왜 이리 깝죽대는지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다. 그러다가 마침내 안중근을 끌어들였다. 듣자니 아픈 데도 부러 군대 갔다나 어쨌다나 그게 안중근에 비길 행동이라나 어쩐다나. 그럼 난 뭐니? 난 .. 2020. 9. 17.
수면 특효약 청구야담, 안중근이 조그만 나이가 많았더라면 한달째 머리맡에 두었는데 도통 끝날 기미가 없다. 보니 상·하 두 권이라 각기 천 페이지라, 진도는 없고 언제나 제자리라, 이러다 서재 어딘가에 쳐박히고 말리라. 이 청구야담靑邱野談은 야담野談이란 제목처럼 대체로 기이한 조선시대 일들을 정리한 것이라 이야기 하나하나가 독립했으니, 이곳저곳 맘 내키는대로 골라 읽으면 되겠지만 기왕 시작한 일 첨부터 끝장을 보겠다고 덤볐다가 낭패보는 중이다. 이리도 더딘 까닭이야 말할 것도 없이 노화현상 때문이니 생평을 단 하루라도 글을 읽지 아니하면 입안에 가시가 돋힌다[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는 삶을 살다가 이젠 다 원스어폰어타임이 되어버렸다. 몇쪽을 넘기지 못하곤 스르르 잠이 들고 마니 반백을 넘기고 나니 이젠 책이 자동수면제가 되어 있더라. 그나저나 하루 독서 가시 .. 2019. 10. 7.
모두가 안중근일 수는 없다 모두가 안중근이 되어 안중근의 눈으로 안중근의 열정으로 안중근의 분노로 역사를 바라볼 수는 없다. 이는 폭력이다. 때로는 조선통감의 눈으로, 때로는 조선총독의 눈으로 때로는 춘원의 눈으로, 때로는 육당의 눈으로 때로는 무지렁이 내 선친의 눈으로 그렇게 바라보아야 한다. (2014.8.16) ****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지금 안중근의 눈으로 역사를 재단하는 것이 아닌가? 아니, 그런 시각을 윽박하지는 아니한가? 안중근처럼 손가락을 짤라야 하며 안중근이 되어 방아쇠를 당겨야 하는가? 내가 아는 역사가 그리 몰아간다. 그렇게 2천만 모든 조선동포가 그리 했어야 한다고 말한다. 2019. 8.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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