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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트루리아19

에트루리아 금공예술 에트루리아는 궁극으로 로마에 흡수 통합되어 그렇지이는 훗날 결과요 그 전성기 시절 그네가 구가한 문화는 동시대 어느 지역보다, 혹은 그것만큼 고도했다.특히 공예 분야가 다달은 수준은 상찬할 만하거니와이 유물 역시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다.기원전 4-3세기 무렵 에트루리아 문명의 금과 석류석 귀걸이 garnet earrings 한 쌍이다.런던 브리티시 뮤지엄 소장이다. 2024. 11. 29.
미스터리 에트루리아어, 그들이 남긴 텍스트들 에트루리아어는 고대 그리스-로마 세계에서 독특하고 인도-유럽이 아닌 특이한 언어다. 로마인들이 점차 이탈리아 반도를 장악하면서 라틴어가 다른 이탈리아어와 함께 점차 대체했기 때문에 에트루리아어에는 알려진 모어도 없고 현대 후손도 없다. 그러나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스Claudius(재위 서기 41-54)는 에트루리아어와 역사에 큰 관심을 가졌다. 그는 그 언어를 말하고 쓸 줄 알았고, 불행히도 오늘날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의 24권짜리 역사를 편찬하기도 했다. 에트루리아인은 에우보이아 그리스 Euboean Greek 상인들과 식민지인들과 접촉한 기원전 7세기가 되어서야 문자 형태로 나타났다. 에트루리아인들이 자기네 언어의 음운적, 문법적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채택하고 적응한 것이 에우보이아 그.. 2024. 11. 20.
방대한 컬렉션 로마 에트루리아박물관 유럽 박물관 미술관이 거개 그렇지만, 겉모습 보고선 뭐 이 정도쯤이야 했다가 낭패보는 데가 한두 군데랴만 오늘 오전에 찾은 National Etruscan Museum of Villa Giulia Museo Nazionale Etrusco di Villa Giulia 라는 데도 전형하는 그런 곳이라, 저 기다란 명칭 뒤에 붙은 말을 무심히 넘겨서는 안 된다. 눈에 비치는 입구는 우리로 치면 마당쇠 부부가 사는 대문칸방에 지나지 않아서, 저 문을 따고 들어가는 순간 광활한 신세계가 펼쳐지는데 결국 저 박물관은 애초에는 빌라 졸리아 혹은 빌라 줄리아라는 사유재산 혹은 다른 사람 소유였다가 언젠가 이탈리아 국가로 넘어가 국립박물관이 되었다는 의미가 되겠으며 무엇보다 그 전문분야는 에투루리아임을 보인다. 로마가.. 2024. 11. 20.
나 로마 다녀왔다 하고 싶거덜랑 로마 와서 이 유물도 실견하지 아니한 채나 로마 갔네나 로마 다녀왔네 하는 말다 시시껍쩍한 허풍이다.이 유물 보고서야나 로마 다녀왔노라비로소 말할 수 있다.#로마에트루리아박물관 에서 섬계剡溪 植 抄한다. 가장 먼저 찾은 로마는 에트루리아 2024. 11. 19.
에트루리아 알파벳 태블릿 에트루리아 알파벳 태블릿 Etruscan Alphabet Tablet이다. 기원전 5세기 무렵 레이티아 성소 Sanctuary of Reithia(이탈리아 베네토Veneto 지역) 공헌물 중 하나로 발견됐다. 에트루리아 알파벳을 순서대로 새겼다. 소장처는 이탈리아 파도바 에스테 고고고학박물관 Archaeological Museum of Este, Padua, Italy 2024. 11. 17.
한때 오리를 선호한 에트루리아 특정한 시기에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니 일대 기반 에트루리아가 선호한 오리 모양 그릇 디자인이다. 저런 그릇들을 아스코이askoi라 하는데 플라스크flask 일종이다. 유행한 시점은 기원전 350-325년 무렵이다. 저 사진들은 클루시움Clusium, 곧 오늘날 토스카나 주 키우시Chiusi라 일컫는 곳 출토품들이다. 신라문화권도 대략 기원전후 무렵 이후 서기 3-4세기? 무렵까지 소위 압형토기라 해서 무덤 껴문거리로 애용하는데 이는 신선도교와 밀접하다. 오리는 뜻밖에도 신선들이 자주 몰고 다니는 자가용이었다. 2024. 1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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