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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6

윤동주와 송몽규 이 두 사람에 대해서는 민족시인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지만, 사실 개인적으론 이 두 사람은 민족시인이라는 이름만으로는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다고 본다. 죽을 때까지 저항한 민족시인이라는 것인데-. 사실 윤동주와 송몽규는 80년대 대학가에 흔하게 존재한 젊은이들과 별차이가 없다. 시대가 암울하여 비운에 명을 달리하였을 뿐이다. 이 양반들은 그 고비만 넘겼으면 아마도 해방 이후 적당한 자리에서 자기 일을 하면서 살아갔을 것이고, 천수를 다하고 인생을 마쳤을 수도 있다. 요즘 태어났다면 요즘 젊은이들처럼 생각하고 고민하는 인생을 살았을 것이다. 대개 격렬한 저항으로 유명해 진 사람들은 인생에 대해서는 경외하지만 뭔가 나와는 다른 종류의 인간이라는 느낌이 커서 그만큼 멀게 느껴지는 것이 보통인데, 이 두 사람.. 2023. 9. 19.
뙤약볕 양복차림에 찾아나선 연희전문의 흔적들 요새 하도 신동훈 교수께서 식민지시대 교육 얘기를 쓰고 그에서 하도 연희전문 이야기가 나와 그 글에 첨부할 사진 자료 모을 요량으로 어제 점심시간에는 부러 신촌을 행차했으니 남들이야 어찌 볼지 모르겠지만 나한테는 모교라 그와 관련하는 심각 혹은 진지하다 할 만한 생각들은 부러 억제하곤 했으니 일이 이리 된 마당에 더는 피할 수도 없어 작정하고 촬영하리라 했으니 그 뙤약볕에 나중엔 어찌 쓰일지도 몰라 이 무더위에 양복 걸치고는 학교 입구에서 학교 간판과 마크까지 찍어대면서 개중 서너컷 신 교수께 전하면서 도판 구한다 고생하시는데 혹 써먹을 것들은 써 소서 했으니 연희전문 입구 들어서자마자 오른편 세브란스병원 경계지점이 백주년기념관이고 그에 연대박물관이 기생하는지라 마침 점말동굴 발견 오십주년 행사를 한다기.. 2023. 6. 6.
윤동주 : 3년반 만에 마친 연희전문 김단장께서 이전 포스팅에 올린 사진. 윤동주가 1938년 봄에 입학해 1941년에 졸업했다고 되어 있다. 사실이긴 한데, 원래 연희전문 문과가 4년제라 윤동주는 원래 같으면 1942년 봄에 졸업해야 했다. 이 당시 전쟁 때문에 6개월 빨리 졸업 시킨 것으로 안다. 아마 1941년 겨울에 졸업했을 것이다. 만약 그가 예정대로 4년을 배우고 1942년 봄에 졸업했다면 그의 인생이 달라졌을까? 모를 일이다. *** Editor's Note *** 비슷한 시기 같은 연희전문 문과를 들어간 훗날의 고고학도 손보기 선생도 휘문고보를 졸업한 1940년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들어가 3년 반 만인 1943년 9월에 졸업하고는 규슈제국대학으로 간다. 2023. 6. 5.
윤동주가 기숙한 연세대 신촌캠퍼스 핀슨관 서울 연세대학교 핀슨관 Pinson Hall of Yonsei University, Seoul 국가등록문화재 제770호 | National Registered Heritage N0. 770 1922년에 기숙사로 지은 이 건물은 연희전문학교 창립 초기에 공이 큰 남 감리교 총무 핀슨 박사를 기념하기 위해 '핀슨홀'로 이름 붙었다. 서울 연세대학교 스팀슨관(사적 제275호)에 이어 신촌캠퍼스 건축물 중 두 번째로 오래된 건물이다. 핀슨관은 좌우 대칭을 이루는 고딕풍 건물로 인근 안산에서 채취한 암갈색 운모편암을 외벽 재료로 사용하고, 3층 지붕 하부를 기숙사로 활용하여 사방에 도머창*이 나 있는 건축 특징이 있다. 이후 신학관, 음악관, 법인사무처 등 여러 용도로 사용하다가 이 기숙사에서 생활한 시인 윤동주.. 2023. 6. 5.
윤동주와 "방계입학" 일제시대 조선에는 대학이 거의 없어 전문학교 졸업생들, 특히 연전과 보전 졸업생은 많이들 일본으로 가 대학을 다녔다는 이야기를 썼다. 그런데 당시 일본에는 많은 "전문대학"이 있었는데 이들은 졸업 후 어떻게 살아갔을까? 아래 위키의 "구제전문학교"항목에 답이 있다. 旧制専門学校における教育は完成教育であり、卒業生の大半は大学等に進学せず企業や官公庁等に就職して社会に出た。制度上は「傍系入学」という形で帝国大学等の官立大学に進学することも可能ではあったが、進学するものは少なかった。例えば横浜高工の場合、大正12年から昭和12年の15回の卒業者2081人のうち、上級学校に進学したものは37人のみであった。就職者は会社工場技術員1284人、官庁技術員372人等であった[8]。 구제전문학교라는 것은 쉽게 말해서 계속 공부하여 학문적 성과를 쌓아가는 과정.. 2023. 6. 4.
일제시대의 지식인: [1] 윤동주와 [2] 송몽규 이 두 사람은 고종사촌 지간으로 이들의 이야기는 연전 "동주"라는 영화를 통해 잘 알려져 있다. 윤동주와 송몽규의 일제시대 프로필을 보면-. 윤동주: 명동소학교-광명중학교-연희전문 (문과) 송몽규: 명동소학교-대성중학교-연희전문 (문과) 이다. 연희전문을 마친 후 둘은 일본유학을 택하는데 결국 조선땅에서는 그 이상의 대학 교육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이들이 조선에서 택할 수 있는 길은 경성제대예과를 들어가거나 (이 경우 연희전문을 나왔으므로 고등학교 과정을 다시 듣는 꼴이다) 아니면 경성제대 본과로 들어가는 것인데 후자의 경우 본과 신입생은 경성제대 예과생, 고등학교 졸업생 등으로 우선순위를 정해 놓았으므로 이들은 사실상 경성제대에서 더 공부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따라서 연전과 보전 졸업자들은 대학공부.. 2023. 5.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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